한방 의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신농씨(神農氏)는 온갖 야생초의 약효를 시험하다 단장초(斷腸草)라는 독풀을 먹고 사망했다고 한다. 무협지엔 독약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대목이 나오거니와 오늘날 치명적인 독을 약으로 바꾸는 일은 갈수록 늘어난다. 투여량을 조절하거나 유전공학을 이용하는 것이다. '보톡스'는 상한 통조림의 보툴리눔에서 추출한 맹독이지만 70년대 후반 안과의사 앨런 스코트가 치사량의 1천분의 1로 사시를 고친 뒤 지금은 주름살과 안면근육 경련 제거 등에 널리 쓰인다. 곡물에 기생하는 맥각균곰팡이의 맥각알카로이드에서 발견된 에르고타민은 편두통 완화,같은 독의 '에르고미트린'은 분만 후 출혈 방지에 사용된다. 급성 심장질환 환자에게 처방되는 아그라스타트는 북살모사 독에서 발견된 혈액응고 방지제 티로피반(tirofiban)을 배양해 만든 것이고,통증 치료와 마취제,각종 시약으로 개발된 테트로도톡신(TTX)은 청산가리보다 1천배 강하다는 복어의 독 성분이다. 현대의학의 최대 목표인 항암제 개발도 각종 독과 떼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흙과 물에서 발견되는 슈도모나스 세균독이나 고열을 일으키는 디프테리아 세균독을 이용한 항암제 만들기가 한창이고,동물의 장에 서식하는 쉬겔라에서 분비되는 베로독 또한 림프종이나 뇌종양 치료제를 만드는 데 응용되고 있다고 한다. 마리화나 연기 속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 성분이 항암제의 부작용인 구토를 가라앉힌다는 보고도 나왔다. 연세대 의대 정광회·박용석 교수팀이 살모사 독에서 추출한 '디스인테그린' 유전자의 뛰어난 항암 기능을 확인했다는 소식이다. 이미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살모사 독의 단백질보다 훨씬 적은 횟수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화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파라셀수스(PA Paracelsus·1493∼1541)는 일찍이 "독성 없는 약은 존재하지 않으며,모든 약은 독이다. 약과 독은 용량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동물실험 결과지만 임상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만큼 하루 속히 실용화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