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제2의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던 김대중정부 시대에 한국영화의 미학이 침체했고 산업적으로도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는지적이 제기됐다. 김병재 용인대 영화영상학과 겸임교수는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학과에 제출한박사학위논문 `한국 대중영화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김대중 정부기간 시나리오의 변형양상을 중심으로'에서 "김대중 정부의 영화정책과 자본을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학 조건들이 시장논리만 강제해 다양한 영화생산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영화감독협회가 주최하는 춘사영화예술제의 조직위원회가 "재임중 스크린쿼터를 지키고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1천500억원의 진흥기금을 조성하는 등 한국영화의 장기적인 발전에 버팀목이 됐다"는 이유로 지난해 말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공로상을 시상한 것과 배치되는 견해다. 그는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르고 영화관람 인구가 1억명을 돌파하는 등 국내 영화산업이 외형적으로 신장했지만 `쉬리'의아류와 조폭 코미디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며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산업적인측면과 영화 질적인 면에서 모두 실패한 한국형 `천덕꾸러기'가 됐으며 조폭 코미디는 영화의 다양성을 방해하는 `깡패'로 등장했다"고 꼬집었다. 김대중 정부의 영화정책에 대해서도 "영화를 국가 차원의 문화로 보기보다 신자유주의 논리에 떼밀려 경제(산업)로만 인식했다"고 전제한 뒤 "3천억여원의 투자조합을 구성해 상업영화 제작의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한 반면 예술영화ㆍ독립영화에대한 지원, 영화단체사업과 학술연구 지원 등은 빈약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 기간에 투기성 강한 금융자본이 영화 제작을 주도하면서 시장의 논리가 극단적인 `한탕주의'로 변질돼 영화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한 질적인 측면에서악화(惡貨)가 악화(惡畵)를 만들어 오히려 악화(惡化)됐다"고 강조했다. 김병재 교수가 이 연구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정치경제적 조건에서 이뤄진 시나리오의 변형 양상. 적지 않은 대중영화의 시나리오가 유행작의 아류로 바뀌거나 규모의 경제방식에 맞춰 포장됐다는 것이다. 멜로 드라마였던 `신라의 달밤' 시나리오(99년)는 `친구'의 영향을 받아 주제가`우정'으로 바뀌고 남성 판타지와 향수를 차용해 2001년 영화화됐다. 2003년 개봉작`남남북녀'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 틀을 빌려온 멜로 드라마 `꽃파는 처녀'(2001년)에서 스크루볼 코미디로 변형된 것. `예스터데이'의 초고인 `비밀'의 시나리오(99년)는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착안해 쓰인 작품. 그런데 SF 블록버스터로 몸집이 부풀려지면서 장르, 주제, 형식,내용이 송두리째 변형된 채 2002년 개봉됐다. 김병재 교수가 신문기자 경험을 살려 쓴 시나리오 `엠바고'(98년)도 당초에는기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휴먼 드라마였으나 영화사의 수정작업을 거치면서 높은 예산이 소요되는 액션 스릴러로 변질됐고 제목도 `데드라인'(2002년)으로 바뀌어제작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