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과도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경계론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체나 정부 수출관련 부처는 물론 시장개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재정경제부 내에서도 무리한 환율방어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기업체는 정부가 환율을 한없이 방어할 수만은 없다는 점에서 "고마움보다는 불안이 앞선다"는 반응이고 정부 관료들 역시 국내외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외환정책으로 인해 물가나 국가신인도 등이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환율방어 정책이 꼼꼼한 의견조율 과정 없이 일부 외환정책 관련 관료들을 중심으로 독단적으로 추진되는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높아지고 있다. ◆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 재경부는 환율 방어의 가장 큰 근거로 '수출 경쟁력 확보'를 꼽고 있다. 지난해 2%대 성장에 그친 국가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고(高)환율 유지'를 통한 수출확대가 불가피하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도 재경부의 환율방어가 수출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현오석 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은 "환율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만큼 정부는 환율안정에 대한 의지를 시장에 강하게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유현 기협중앙회 국제협력팀장도 "원화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방지할 정부의 대책이 긴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과 달리 정부 부처 내에서는 환율방어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경부 금융정책국이나 국민생활국 관계자들은 "원론적으로 환율을 지나치게 방어할 경우 여러가지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단기적으로는 물가불안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환율방어로 수출호조의 '수혜'를 입고 있는 산업자원부에서도 "수출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대놓고 문제삼을 수는 없지만 걱정은 많이 된다"는 분위기. 익명을 요구한 산자부 고위 관계자는 "재경부의 최근 외환시장 개입은 과잉 측면이 강하다"며 "지금처럼 재경부가 환율하락을 계속 막을 수는 없다고 볼 때 나중에 환율급락시 업체들에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시장개입의 정당성 논란 재경부의 논리와는 달리 환율이 어느 정도 하락하더라도 수출전선에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컴퓨터 등은 환율변동에 그리 민감한 품목이 아니다"며 "환율이 1천1백50원 밑으로 내려가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재경부가 발표한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규제조치 또한 타당한 근거를 찾기 힘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은 "가격변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규제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는 경우라면 몰라도 단지 환율방어를 위해 NDF 규제조치를 내놓은 것이라면 정당성을 부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이젠 한 발짝 물러서야 정부의 외환정책이 '스무딩 오퍼레이션(환율 변동 속도조절을 위한 미세조정)' 차원을 넘어섰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장원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도 내수가 위축돼 있는 가운데 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지만 환율 하락속도를 조절하는데 그치고 있다"며 "지나치게 한 쪽 방향으로 경직된 외환정책은 결국 환율급락을 초래하게 되므로 미리미리 정책수위를 조금씩 낮춰갈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도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한 수출확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바람에 균형감각을 잃고 수출의 포로가 됐다"며 "이제는 원화절상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실탄도 떨어져가는 만큼 한 발 물러서서 숨고르기를 하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