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대금을 내지 않고 발행한 이른바 '유령주식'의 책임 소재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가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 어느 한 쪽도 "우리가 잘못했다"고 나서기는커녕 저쪽 책임이라고 떠넘기기 바쁘다. 투자자는 물론 증권업계 사람들도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이번 '유령주'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대호 동아정기 중앙제지 모디아 등 4개사는 지난해 중반 이후 제3자 배정방식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증자대금을 납입하고 나면 회사는 신주를 발행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이들 주식은 시장에서 거래된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증자대금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신주를 나눠줬다. 신주를 발행하기 위해 증자대금이 들어온 것처럼 허위증명서도 만들었다. 금감원과 거래소는 허위증명서를 적발해내지 못했고 결국 '가짜주식'이 유통돼 선의의 피해자가 많이 생겼다. 이 같은 문제점을 적발한 쪽은 대호의 감사인이었다. 대호의 감사를 진행하던 중 유상증자 과정이 미심쩍어 은행에 확인해본 결과 대금납입증명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감사인은 지난해 12월24일 금감원에 이를 통보했다. 금감원은 미적거리다 26일 오후 6시께 거래소에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려줬다. 거래소는 통보받은 지 4일이 지난 12월30일 대호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미 가짜주식이 유통되고 난 이후다. 금감원과 거래소의 안이한 대처가 화(禍)를 키운 셈이다. 그러고선 금감원은 거래소가 통보받은 직후 정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거래소는 "금감원 통보만으로는 거래를 정지시킬 수 없다"고 변명한다. 금감원과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도 제고가 핵심 업무인 공공기관이다. 특히 유령주 사건 이후 피해를 입은 투자자를 어떻게 구제할지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는 데 많은 이들은 분통을 떠뜨리고 있다. 책임 소재를 가리기 앞서 피해자 구제 방안과 향후 재발대책 등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증권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증시를 개인투자자들이 외면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유관기관들의 무책임 무소신 때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준동 증권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