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NHK 방송은 80년대 초 '일본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야생종이나 재래종을 이용한 다수확 밀과 옥수수 품종의 개발 과정 및 유전공학을 이용한 품종 개량 현황 등을 상세히 담은 기획물이었다. 취재진은 이어 '한 알의 종자가 세계를 바꾼다'는 책을 출간했다. 종자 선진국의 면모를 일찌감치 드러낸 셈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종자전쟁에 휩싸여 있다. 국제 식물신품종 보호협약(UPOV)에 따라 곡물·채소·화훼 등 전 식물의 신품종에 대한 지식재산권이 보호되면서 각국 모두 새로운 종자 개발 및 유전자원 수집·보호에 총력을 기울인다. 우수한 씨앗 개발에 뒤지면 종자를 수입해야 하는 데다 로열티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98년 종자산업법을 제정한 데 이어 지난해 농촌진흥청 종자관리소에서 사과 배 복숭아 오이 등 4개 작목 27개종에 대해 품종보호권을 설정하는 등 종자산업 육성 보호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장미와 난 등 화훼 종자는 95% 이상 수입하고,야채 역시 상당부분 외국산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결국 딸기 재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계절 없이 먹고 수출하는 하우스딸기 종자 90%가 일본산인데 조만간 로열티를 물어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UPOV에 가입함으로써 올해 안에 딸기를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지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2년 뒤부터는 일본산 딸기를 재배하거나 수출할 경우 로열티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안그래도 일본 유통업체들이 지난해 야채에 대한 생산이력표시제를 도입하는 바람에 수출이 줄었는데 로열티까지 물면 딸기 수출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꽃과 과일에도 상표사용료가 붙는 건 막을 수 없는 대세인 만큼 방법은 보다 우수한 우리 품종을 개발,보급하는 것밖에 없다. 종자산업의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야생·재래종을 이용한 품종 개량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병충해에 강하고 건강에 좋은 기능적인 품종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종자를 둘러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