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을 앞둔 요즘 과천 종합청사의 풍경은 지난 2000년 4.13 총선 때와 너무도 흡사하다. 공약성 정책들이 줄지어 발표되고 젊은 관료들과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은 연일 정책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에 동원되고 있다. 2000년 새해 벽두,당시 김대중 정부는 "2004년까지 2백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제활동인구 증가분 1백70만명과 실업자 감소분 30만명을 합한 수치였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책 최우선 과제를 고용창출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실업자 구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은 묘하게도 딱 4년 만에 재연됐다. 여기에다 김대중 정부가 실업자 구제를 위해 공공근로사업을 거의 무제한으로 확대한 것이나 현 정부가 공기업들을 중심으로 고용을 늘리겠다는 구상은 기본 발상이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지켜지지도 않을 선심성 정책의 양산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은 어설픈 정책을 잘못된 '프로세스'로 밀어붙이는 경우다. 김대중 정부의 실업대책 실패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는 2000년 말에 비해 95만8천명 늘어났고 실업자 수는 9만8천명 줄었다. '목표치'2백만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절반은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 거리는 40만명의 청년 실업자로 넘쳐나고 20대 근로자의 절반은 임시·일용직으로 내려앉았다. 세간에는 '이태백(20대의 절반이 백수)''사오정(45세가 정년)''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놈)'등 자조 섞인 한탄들이 넘쳐난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실업자 구제를 위해 공공근로 확대와 건설·소비경기 활성화를 양대 축으로 삼았다. 정부 재원으로 하루 평균 15만여명에게 단기 일자리를 제공했다. 아파트 건설현장의 일용직 채용도 증가했다. 신용카드 사용이 장려되면서 관련 서비스업의 고용 역시 반짝 경기를 누렸다. 반면 최대 고용처인 제조업체들은 신규 인력을 충원하는 데 주저했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상시 구조조정시스템의 정착,철벽같은 재벌개혁의 논리와 각종 규제로 인해 기업투자를 늘릴 수 있는 요인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불균형은 기업 생산설비의 해외 이주로 나타났고 매년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중국 등지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총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올인 전략'이 정작 고용문제에 대해서는 반쪽짜리로 그치고 만 셈이다. 모기업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돌이켜보면 부동산 가격 폭등과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 양산도 잘못된 경기·고용대책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며 "건설 및 소비경기가 단기적으로 부양되는 듯 했지만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내수경기는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고용확대 정책도 지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정부 부문과 공기업 채용을 늘리겠다는 생각은 '공무원들은 스스로 확장욕에 사로잡혀 일을 만든다'는 '파킨슨의 법칙'대로 규제가 더욱 증가할 개연성이 크다. 오히려 민간부문의 고용을 '구축(驅逐)'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다들 일자리 문제를 걱정하는데 일자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며 "일자리 나누기나 정년 연장과 같은 미봉책 대신 기업들이 자유롭게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