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화 < 티켓링크 사장 ceo@ticketlink.co.kr > 필라델피아의 자랑 중에 킴멜센터라는 곳이 있다. 필라델피아 중심가 마켓스트리트에 자리잡은 이 대형 현대식 건물은 외관과 내부 설계가 독특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필리아트라고 불릴 정도로 새롭게 떠오르는 필라델피아 현대 공연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킴멜센터 객석의 좌석 뒤편에는 사람 이름들이 씌어 있다. 처음엔 예약자의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인가 했지만,그게 아니었다. 좌석에 부착돼 있는 것은 일회용 팻말이 아닌 금속판 이름표였다. 궁금한 마음이 들어 관리직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바로 킴멜센터를 건립할 때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이라고 했다. 좌석 뒷면에 하나 하나씩 새겨진 이름들이 대형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움이라고만은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의 사회지도층,그리고 가진 자들의 당연한 의무로 여겨지고 있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인종,소득 불균형,마약,총기….미국이란 나라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초강대국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들의 저력 중 하나가 바로 '상류층의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가 한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선진국이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문화현상이다. 킴멜센터의 홀을 가득 채운 기부자들의 이름과 오버랩돼 떠오르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공연 초대권이었다. 초대권은 공연 기획사가 모시고 싶은 분들에게 보낸다. 바꿔 말하면 공연,문화계에 영향력 있는 분들,즉 문화계의 노블레스들에게 드리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문화계의 노블레스들이 초대권을 사양하면 어떨까. 하나의 창작을 위해 흘린 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초대권을 사양하고 표를 사서 입장하겠다고 말한다면,기부자들의 힘으로 세워진 킴멜센터보다 더 값진 우리 문화계의 아름다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될 것이라 믿는다. 하나의 문화 작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현장 예술인들의 긍지를 인정한다는 말 없는 표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초대권을 받지 않고 표를 산다고 해서 좌석 뒷면에 금속판으로 이름을 새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는 말씀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