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잡히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땅값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아파트 시장에서 빠져 나간 뭉칫돈이 빠르게 땅으로 몰리면서 전국 곳곳에서 투기판이 펼쳐지고 있다. 80년대 중반 아시아경기대회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땅투기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지 거의 20년 만이다. 집값은 10년,땅값은 20년이라는 부동산경기 주기설이 맞아떨어지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땅값을 잡기 위해 다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설 태세다. 땅투기 혐의자 수만명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 방침에 이어 조만간 '토지시장 안정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땅투기를 몰고온 책임을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경험칙상 땅투기는 정부의 개발정책을 먹고 산다. 정부의 크고 작은 개발계획은 항상 해당 지역의 땅값에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경기대회 및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쏟아진 각종 개발계획이 그랬고 선거 때마다 발표된 선거 지원용 개발계획이 그랬다. 작금의 땅투기 붐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집값이 잡히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이후 정부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토지정책의 변화를 시사해 왔다. 해당 부처인 건설교통부는 물론 재정경제부와 농림부까지 나서 토지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다. 여기에 굵직굵직한 개발계획까지 더해지고 있다. 덕분에 고속철도 중간역 주변은 물론 행정수도 후보지,미군부대 이전지,신도시 후보지,경제특구,지역 특화단지 등 전국 곳곳이 투기장화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각종 개발계획이 정부에 의해 양산돼 왔지만 이번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단순한 특정 지역의 개발계획에 그치지 않고 토지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삼은 듯하다. 땅투기가 종전처럼 국지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전국화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토지규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말로 토지규제 완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먼저 떠들기부터 한다면 땅값만 올릴 뿐 일자리 창출은 언감생심이다. 가뜩이나 비싼 땅값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기업들이 더 비싼 땅값을 치르면서까지 국내에 공장을 지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목표대로 토지규제 완화 및 대형 개발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면 좀 더 기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투기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 마련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또 정치 논리에 밀린 구호성 발표보다는 완벽한 프로그램을 짠 뒤 발표하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63년 프랑스 정부의 '랑독·루시옹' 개발프로젝트는 우리 정부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길이 1백8km,폭 20km의 연안 황무지를 초대형 휴양도시로 개발하면서 땅값을 붙들어매는 데 성공했을 뿐더러 나아가 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프랑스 정부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땅값 안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따라서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땅 매입부터 비밀리에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개발계획 발표와 동시에 개발면적의 5배에 해당하는 주변지역을 '장기개발지구'로 묶어 토지거래를 제한했다. 설익은 개발계획을 서둘러 발표하고 그것을 실적으로 삼는 우리 정부의 분위기와는 너무 다르다. 정부는 더 이상 땅투기의 책임을 투기꾼들에게만 떠넘겨서는 안된다. 투기꾼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기를 미리 방지하는 게 정부의 더 큰 덕목이다.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