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1일 콜금리 결정을 위한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 박승 한국은행 총재(금통위 의장)는 회의를 주재하다 말고 갑자기 자리를 떴다. 금통위 회의가 시작된 지 30분만이었다. 청와대(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부름(?)을 받고 황급히 몸을 뺀 것이다. 총재의 부재(不在)가 알려지자 까닭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콜금리 결정 도중 자리를 비운 것은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도 함께 나왔다. 이에 대해 한은은 "금통위는 여러 명의 위원이 의견을 교환하는 협의체이기 때문에 총재 한 명이 빠졌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달에도 한은 총재의 금통위 참석 문제와 관련해 다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한은이 총재의 해외출장을 이유로 금통위 개최일자를 임의로 바꾼 것.한은은 언론에 배포하는 '주간 보도계획'을 통해 오는 12일로 예정돼 있던 이번 달 금통위 정기회의를 은근슬쩍 6일로 1주일 앞당겼다.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설명은 생략됐다. 이번에도 기자들의 질문이 줄을 이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대외적으로 이미 발표된 회의일자를 바꾸는 것은 한은 정관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대외 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한은 정관 제9조에는 '금통위는 매월 둘째,넷째 주 목요일에 정기회의를 개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은은 "박 총재가 이번 주말부터 국제결제은행(BIS) 아시아지역회의 등에 참석하므로 금통위 일정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불과 두 달 전 "총재가 없어도 금통위는 제대로 굴러간다"던 설명과는 정반대의 논리를 편 것이다. 지난 2일부터 한은 정문에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한은 노조원들이 김종창 신임 금통위원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금통위원처럼 '중요한' 자리에 관료출신이 임명돼 정부 입김이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노조원들이 목청을 높이는 사이,한은은 스스로 금통위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안재석 경제부 정책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