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하 기관장을 뽑으면서 외형상은 공채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내정자를 잇달아 선임하고 있어 공모절차는 한낱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일부 기관장은 공모가 나기도 전에 결정되거나 응모하지 않은 사람이 임명되는 사례도 있어 순진한 응모자들은 공모절차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공모(公募)냐, 공모(共謀)냐 =최근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을 이사장으로 확정한 근로복지공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실시된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공개채용에는 모두 29명의 인사들이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인사추천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노동부 안팎에서는 방 전 장관이 새 이사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 지난해 9월 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선임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후보로 꼽히던 노동부 실장 및 차관급 출신들은 이사장 공채에 공모하지 말라는 지시가 윗선에서 강력하게 내려왔다는 후문이다. 결국 유력한 후보들이 중도에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하순 공채 공고가 나간 학교법인 기능대학 이사장 역시 노동부 국장 출신인 P씨가 이미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공채를 가장해 사실상의 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7월엔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으로 노무현 대통령 측근인 김재규씨가 선임되면서 공단 노조가 반발성명을 발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마찰이 일기도 했다. 류건 한국관광공사 사장 역시 지난해 6월 형식상 공채를 통해 선임됐으나 관광공사 노조에 의해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 응모했다가 고배를 마신 한 인사는 "이사장 공개 채용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선임하면서 지원서도 내지 않은 탤런트 겸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인 유인촌씨(53)를 뽑아 논란을 빚었다. ◆ 낙하산 인사 논란 여전 =오는 3월 출범할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이나 기업은행장 자리도 낙하산 시비가 일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지난달 17일 주택금융공사 사장의 인터넷 공모에 들어가 19명이 응모했지만 진작부터 재경부 출신인사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은행의 행장 자리도 공모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민간 금융인이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거론되는 후보가 정부나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출신 인사 일색이다. 한국은행 노조가 김종창 전 기업은행장의 금통위원 출근을 저지하고 나선 것도 '정부 입김이 작용한 인사'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은행연합회가 '재경부 입김을 배제한 가운데 독자 판단에 따라 추천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게 사실. 금융계에서는 조만간 임기가 닥치는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부회장 2명, 우리은행장,경남은행장, 광주은행장, 통합증권거래소 이사장 등도 앞으로 공모절차를 통해 선임할 가능성이 높지만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