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둥(浦東)의 장장(張江)하이테크단지에 자리잡은 반도체 전문 업체인 GAPT. 정문에 들어서자 '중국 산업의 첨단화, 우리가 만든 반도체에서 완성된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사무실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연구진이 현미경에 눈을 대고 연구에 한창이다. "지금 대만의 반도체 기술이 통째로 상하이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만에서 이루지 못한 선진 반도체업체의 꿈을 이곳 상하이에서 이루려 합니다." 이 회사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데니얼 황(黃逸誠) 부장의 설명이다. 반도체 후공정(포장 및 검사) 전문 업체인 GAPT가 상하이로 온 것은 3년여 전. 당시 하나 둘 늘기 시작한 상하이 반도체 조립공장을 겨냥한 투자였다. 그러나 GAPT는 지금 상하이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반도체 관련 업체의 하나일 뿐이다. 상하이에는 GAPT와 같은 후공정 업체만 80여개에 이르고 있다. 디자인(설계) 업체의 경우 2백여개에 달한다. 또 SMIC 화훙 NEC 훙리 등 조립공장 7개가 '실리콘 상하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세계 주요 IT업체의 공장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분야가 바로 반도체다. 컴퓨터 휴대전화 디지털가전 등 세계 주요 IT기업의 공장을 유치한 중국이 던진 IT 분야 마지막 승부처인 셈이다. 이같은 노력은 상하이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상하이 반도체 업체의 총 매출액은 작년 약 1백억위안(약 12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년에 비해 70% 이상 급증한 수준이다. 상하이IC산업협회 쉐쯔(薛自) 부비서장은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상하이 SMIC가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면서 매출액이 크게 늘었다"며 "앞으로 5~6년 동안 상하이지역 반도체산업은 발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하이의 약진에 힘입어 중국 반도체산업은 지난 수년 동안 연 평균 60% 안팎 급성장해왔다. 반도체 전문 연구기관인 IC인사이트는 중국 반도체(완정품) 생산액이 작년 13억달러에서 오는 2005년에는 42억달러, 2010년에는 1백53억5천만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만간 미국 일본 한국 등과 견줄 수 있는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산업의 발전은 중국 산업의 첨단화 속도를 반영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관련 IT산업과 함께 발전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반도체가 가장 많이 쓰이는 휴대전화와 PC 등의 분야에서 세계 1,2위 시장 규모를 갖추고 있다. 또 컬러TV DVD플레이어 등은 세계 생산 1위다. 이들이 중국 반도체산업의 기초를 만들어주고 있다. 상하이 베이징둥루(北京東路)의 '상하이IC설계창업센터'. 반도체 분야 젊은이들이 모인 꿈의 창업 인큐베이터다. 현재 70여개 반도체, 1천3백여명이 보육센터에서 미래 반도체 황제를 꿈꾸며 기술 개발에 땀을 흘리고 있다. 이곳에 자리잡은 상하이푸단웨이뎬쯔(上海復旦微電子)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반도체 업체. 푸단대학교 교수 및 학생들이 창업한 이 대학 벤처는 1998년 설립 이후 매년 30∼40%씩 성장, 지금은 중국의 '토종 반도체 업체'로 이름이 높다. "입주 기업에는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이 제공됩니다. 한 해 수십개의 아이디어가 상품화돼 떼돈을 버는 사업으로 연결되지요. 푸단웨이뎬쯔의 경우 이미 선진국 수준의 반도체 설계기술에 접근했고, 지난 2000년에는 홍콩증시 상장에 성공하기도 했지요." 창업보육센터의 첸궈쏭씨의 설명이다. 상하이 반도체기술 수준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비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쉐 부비서장 역시 "패키징 등 후공정의 경우 1세대(약 2~3년), 제조의 경우 2세대(4~6년), 설계는 3세대(10년 정도) 뒤져 있다"며 "일부 패키징(포장) 분야가 선진국 수준에 접근했을 뿐 아직도 멀었다"고 시인한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중국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이철희 상무는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로 볼 때 세대 구분에 따른 수식적 기술 차이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그는 "중국 경제는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며 "이미 중소 규모 선진 반도체 업체가 중국의 힘에 빨려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이미 대만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을 상하이로 불러 모았다. 이제 그 힘을 한국 미국 일본 등의 업체로 확대할 기세다. 하이닉스 자회사 하이디스가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한 사레에 불과하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면서도 '그 공장에 머리(두뇌)가 없다'는 조롱을 받아온 중국. 반도체산업의 성장은 그 중국 공장에 머리가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