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에게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을 들라면 단연 의료보험료 부담을 꼽는다. 종류별로 다르지만 웬만한 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가구당 한달에 6백달러(72만원)에서 1천달러(1백20만원)를 내야 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최대 이슈 중의 하나가 의료보험제도 개선일 정도로 이 문제는 모든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사다. 그런 보험료 부담 때문에 요즘 직장을 그만둔 미국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비용절감이 절박해진 기업들이 은퇴한 직원들에 대한 의료보험료 보조를 줄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 직원에 대한 의료보험료 보조는 기업 자율이지만 평균 지원비율은 60% 정도에 달한다. 월 6백달러짜리 보험에 든 직장인이 퇴직 후 회사로부터 60%인 3백60달러의 지원을 받는 셈이다. 이제 그 사람은 3백60달러를 어디선가 마련해야만 한다. 퇴직자에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 돈을 마련할 길이 없는 은퇴자는 무보험 인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연방정부의 메디케어(노인의료보장)가 적용되는 65세에 은퇴할 수 있다면 그같은 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퇴직 나이를 장담할 수 없기는 미국도 한국이나 마찬가지다.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직시킬 수 없지만 아무리 적은 나이라도 이유만 타당하다면 언제든지 해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직원수가 5백명이 넘는 기업중 퇴직자에게 보험료를 보조해주는 기업은 절반이 넘었다. 그러나 요즘들어 그 비율이 36%로 줄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건강 경제학 교수인 우에 라인하르트는 "20년 후엔 그런 보조를 해주는 기업은 아마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기업을 탓할 수는 없지만 점점 더 많은 퇴직자들이 의료보험 상실이라는 또다른 고통을 겪을 것 같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