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환시장 개입 제한적이어야 .. 최생림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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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생림 < 한양대 교수.한국외환연구원 원장 >
얼마 전 국내의 대표적인 조선회사 CFO(재무담당 최고임원)와 외환위험에 대해 얘기하다가 "회사가 손해볼 정도로 환율이 불리해지면 정부가 방관하겠느냐"라는 얘기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지켜보면서,그런 인식이 전근대적인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환율 변화의 폭이나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서,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일은 예외라기보다는 관행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단기 환율이 경제적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정부로서는 환율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일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중요하다.
작년 일본은 20조엔을 시장 개입에 사용했고,중국도 시장 압력을 줄이기 위해 방대한 외환보유액을 쌓아왔다.
비단 아시아 국가들만 개입하는 것도 아니다.
2000년 유로화가 80센트까지 하락했을 때 유럽중앙은행도 유로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한 바 있다.
이번 주말에 있을 G7 회의에서 일본의 시장 개입 중단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유럽중앙은행은 다시 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 개입을 함에 있어 절도와 한계를 지켜,시장의 규율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입이 시장의 흐름과 시장의 법칙을 존중하는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재정경제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도를 넘어섰다는 우려를 면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기업의 수익성을 염두에 두고 일정 수준에서 환율을 방어하겠다고 언급했고,이를 위해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 메커니즘에 제동을 거는 강수를 동원했다.
일본 당국은 시장에 개입하되 특정한 수준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있는데,이것이 바로 우리 당국자들과 차이점이다.
궁극적으로 수익을 지켜 나가는 것은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 선진국 기업들은 최근 위험관리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위험관리 기법도 크게 발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은 효과적인 외환위험 관리를 통해서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나갈 책임을 지는 것이고,정부는 과도한 단기 변동성을 완화하면서 기업에 시간을 벌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
국내 외환시장이 규모도 작고 발달 정도도 미진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차액결제선물환 시장은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 시장은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외환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발달해왔다.
즉 국내 자본시장을 외국 투자자들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시장이다.
이 시장의 거래시스템에 직접 규제를 가함으로써 정상적인 외국 투자자들의 거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한 것은 분명히 정도를 벗어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책 당국의 이러한 돌출성이 시장에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는 과거 옵션거래를 중단시킨 조처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1980년대 말 일부 대기업과 외국은행 국내 지점들 간에 통화옵션을 가장한 외화대출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이 때 당국은 변칙적 거래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아예 통화옵션 거래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 금지 조처는 10여년 전 해제됐으나,아직까지도 국내에서 통화옵션 거래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 시장에서는 거래자들이 직선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거래하지 않고,우회적인 거래 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예컨대,최근 미국에 투자하는 대부분의 외국 투자자들은 단순히 달러를 바로 매입하기보다는 스와프 거래로 매입함으로써 위험을 헤지한다.
대안 시장이 잘 발달돼 있지 못한 원화시장에서 차액결제선물환 시장은 외국 투자자들이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유용한 시장 중 하나다.
이 시장을 정부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봉쇄할 수 있다고 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외국 투자자들을 대단히 불안하게 만들고 자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왜곡시키는 일이다.
srcho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