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하고 보자"…전근대적 수사 ‥ 검찰 관행ㆍ구치소 운영 문제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검찰수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한지 6개월 만에 안상영 부산시장이 부산구치소 안에서 자살함에 따라 검찰의 수사관행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는 일단 '무죄'로 봐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또 나온다.
예산및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혐의자는 일단 가둬놓고 보자'는 검찰의 편의주의적 수사관행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피의자를 '보호'해야 할 구치소의 운용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답지 않게 전근대적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방치된 피의자 인권=목매 자살한 안 시장이 수감됐던 부산구치소의 경우 복도를 제외한 실내난방이 전혀 안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들은 "유난히 추웠던 부산날씨 탓에 정상인도 활동하기 힘든데 평소 추위를 타는 안 시장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이는 혐의자를 죄인 취급하는 '형벌'이나 만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개월여간의 수감생활 동안 피폐해진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태가 자살의 한 원인이라는 것. 안 시장은 면회를 온 측근들에게 추위 등 고통을 호소했지만 구치소 측은 '1인당 2벌'이라는 규정을 들어 솜옷과 내복 반입을 거절했다.
안 시장이 지난달 17일 뇌출혈 의심증세로 긴급 수송돼 일반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것이 그 결과라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변호인들은 병원가료 또는 병보석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안 시장의 한 측근은 "유죄판정이 나지 않았는 데도 범죄인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죄가 확정될 때까지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면서 정상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구치소의 환경조성이 아쉽다"고 한탄했다.
특별대우가 아닌 '기본'이 문제라는 것이다.
◆구멍난 의료체계=상시대기하는 의료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2천5백여명이 수용된 부산구치소 역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병원으로 피의자를 이송하는 게 유일한 응급조치다.
교도관이 직접 작성하는 접견부에서 "안 시장은 한때 의식이 없어 부인을 못 알아볼 정도였다는 내용을 발견했다"고 적혀 있다.
또 '걷기도 힘들다. 추운 게 견디기 힘들다. 움직일 수 없다'는 내용도 있다.
안 시장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는 데도 구치소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소자 거실구조도 개선사항이다.
구치소측에 따르면 안 시장이 전날 오후 8시께 잠자리에 들었다는 점에서 이 시간부터 약 5시간 동안 안 시장의 동태에 대한 파악이 이뤄지지 못했던 셈이다.
의료병동의 경우 일반 수용거실과 달리 아크릴 창문이 나 있지만 거실 내부의 환자상태를 명확히 파악할 정도로 투명하진 못해 거실 구조상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선풍기 걸이가 아크릴 창문쪽 벽에 부착돼 있어 복도를 지나다니며 순찰하는 교도관이 안 시장을 신속히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수사' 남발=그러나 구속수감을 경험해본 '피의자'들은 무엇보다 '구속하고 보자'는 수사관행을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다.
국내 구속수사 빈도는 국내 사법체계의 모델인 일본 독일보다 최고 40배에 달한다는 것.
검사 출신의 K변호사는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효율을 명분으로 구속수사하는 게 많다"며 "이중 상당수가 수사편의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안 시장도 '수사'를 제대로 받지도 않은 채 서울 부산을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과련해 최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무죄로 풀려난 한 기업인은 "수사관들에게 고압적인 추궁을 당하다 보면 내 스스로 '죄인'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 극단적 공포감과 모욕감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감 한달 만에 14㎏이 빠졌다. 도청이 될지 모른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부산=김태현·이관우 기자 hyu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