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고암(顧菴) 이응노 화백(1904~1989)이 태어난 지 1백주년 되는 해다.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80년대 이응노 군상(群像)'전은 고암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으로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군상 작품들이 출품됐다. '군상'시리즈는 고암이 1980년을 기점으로 작고할 때까지 10년간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다. 한지에 먹으로 그려진 수십·수백·수천의 인간들이 서로 손잡고 율동을 취하고 있는 모습은 살아숨쉬는 역동성이 돋보인다. 인간은 고암의 작품에서 언제나 중심을 차지하는 화두였다. 60년대 추상화,70년대 문자추상에서도 인간은 기호화된 형태로 등장했다. '군상'연작에 나타나는 인간은 80년 광주사태가 계기가 됐다. 고암은 생전에 "나의 그림은 추상적인 표현이었으나 광주사태가 있고 나서부터 좀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구상적인 요소를 그림 속에 가져왔다"고 술회했다.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고암은 자신의 그림제목을 "'평화'라고 붙이고 싶다"며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민중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홍성 출신인 이응노는 58년 파리로 건너가 63년 '살롱 도 톤'전에 출품하면서 유럽화단에 알려지게 됐고 68년에는 제8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명예대상을 획득,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67년 동베를린 공작단사건에 연루,강제 소환돼 옥고를 치른 후 69년 사면됐다. 동양의 서예와 문인화 정신을 기반으로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혼용해 독특한 환상적 기호로 개성적인 화면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았다. 6월27일까지. (02)3217-5672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