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실미도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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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인식해야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이 아니라도 사람과 장소 모두 의미가 부여되면 전과 전혀 다른 느낌과 형상으로 다가온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혹은 세트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도 그래서일 것이다.
소나무 외에 아무 것도 없는 텅빈 바닷가였던 정동진의 경우 '모래시계' 이후 국내 굴지의 여행지로 자리잡았고 '겨울연가'의 춘천 남이섬과 경남 외도,'공동경비구역'의 충남 서천 신성리 갈대밭 등도 명소로 떠올랐다.
최근엔 한류 열풍에 따라 일본 중국 대만 등 동남아 관광객도 늘어난다.
지난해 내한한 대만인이 급증한 것도 한국영상물의 배경 및 한류스타를 찾아온 이들 덕이라고 할 정도다.
한국관광공사가 홈페이지에 드라마 '여름향기'의 보성 차밭,'다모'의 담양 대나무숲 등 촬영지 여행정보를 올리는 것도 이런 열풍과 무관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인천시가 영화 '실미도'의 배경을 찾는 이들을 위해 무의도와 실미도 사이에 징검다리를 만든다는 소식이다.
무의도(舞衣島)는 '춤추는 이의 옷처럼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
영종대교를 건너 인천공항 쪽으로 가다 '용유ㆍ무의'라는 이정표를 따라 달리면 나오는 잠진도 선착장에서 차 싣는 배로 8분여 가면 나온다.
예전엔 낚시꾼이나 찾던 곳이지만 영화 '실미도'에 이어 드라마 '천국의 계단' 세트장으로 등장하면서 '떴다'.
물이 빠지면 실미도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갯벌을 건너기가 불편한 만큼 징검다리를 놓는다는 얘기다.
촬영지 마케팅의 중요성에 눈떴다곤 해도 거금을 들여 지은 세트장을 불법이라며 철거하거나,태풍에 방치해 무너지도록(강화 석모도 '시월애'세트 '일 마레') 두는 게 우리 실정이다.
촬영지를 영구 관광지화하려면 영화사와 지자체가 긴밀하게 협력,잘 관리하고 '일 마레'처럼 행여 사라지면 홈페이지와 여행사 등에 빨리 알려 여행객들이 허탕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띄우기만 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