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언덕에는 아직 잔설(殘雪)이 남아 있지만 겨울이 내리막길에 접어든 건 분명하다. 일주문 왼편에 흐르는 냇물에선 얼음이 녹아 깨지는 소리가 연방 들린다. '쩌억- 찌익-.' 날씨가 흐릴 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햇살도 따스하게 비추고 바람마저 훈풍으로 볼을 스친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백화산 반야사 가는 길은 이렇게 화창했다. 반야사는 신라 때인 720년 의상 대사의 제자인 상원 스님이 창건한 절. 절 주위에 지혜를 주관하는 문수 보살이 상주한다고 해서 반야사라고 했다 한다. 황간 요금소에서 절까지는 약 9km. 시내버스가 서는 우매리 독점삼거리를 지나 절까지 10분이면 도착한다. 일주문을 지나 냇물소리를 즐기며 절 앞에 당도하자 오른편에 부도밭이 보인다. 잔돌을 새로 깔고 그 가운데 선 2기의 부도는 표면이 심하게 닳고 마른 돌이끼까지 끼어 세월을 짐작케 한다. 백화산을 끼고 도는 석천을 마주보고 선 반야사는 입지가 절묘하다. 석천이 태극 문양처럼 산을 휘감아도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데다 겨울인데도 석천의 수량은 풍부하고 폭도 널찍하다. 신라 고찰이지만 고건축물은 많지 않다. 대웅전은 10여년 전 신축했고 그 전까지 대웅전 역할을 했던 극락전이 고색창연하다. 극락전 앞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3층 석탑과 수령이 5백년이나 되는 배롱나무 두 그루가 가지런히 서 있다. 3층 석탑은 원래 석천 계곡 위쪽으로 1km쯤 떨어진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옮겨왔다. 또 배롱나무는 조선 건국 당시 무학 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둔 것이 둘로 쪼개져 한 쌍을 이뤘다고 한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절 마당에 내려서면 맞은편에 망경대와 문수전 가는 길을 일러주는 안내판이 보인다. 석천을 왼편에 끼고 절의 서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2백m쯤 올라가니 수십평의 너른 돌이 깔려 있는 영천이다. 이곳에는 세조가 문수 보살의 안내로 이곳에서 목욕한 뒤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영천 위로는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조그만 집 한 채가 서 있다. 문수 보살을 모신 문수전이다. 가파른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타고 곡예하듯 올라가서야 문수전을 만난다. 근년에 지었다는데 건축자재를 어떻게 날랐을까 싶다. 문수전이 선 곳은 '문수 바위'로 불리는 망경대. 문수 보살이 빼어난 주변 경관을 굽어봤다는 곳이다. 문수전 앞에 서자 산을 굽이쳐 내리는 석천과 주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느라 숨가빴던 것도 탁 트인 경관 앞에선 잊어버릴 정도다. 망경대에 선 것만으로도 오늘 다리품을 판 것이 헛되지 않을 듯싶다. [ 여행수첩 ] 반야사는 신라고찰이지만 세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절이다. 경부고속도로 황간IC에서 빠져나와 황간면 소재지쪽으로 향하면 '반야사 9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구미행 고속버스를 타면 황간IC에서 내려준다. 황간에서 90분에 1대꼴로 다니는 버스를 타면 절에서 4km 떨어진 독점3거리까지 갈 수 있다. 백화산은 등산코스가 여러곳 개설돼있어 등산을 겸하는 것도 좋다. 옥동서원 월류봉 양산팔경 등 주변 명승지를 돌아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생선국수,올갱이(다슬기)국밥,메기매운탕,사슴고기 요리 등의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영동=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