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어느 건물에 들어가더라도 신분증을 보이고 이름과 들어오고 나간 시간을 기록해야 한다. 9·11테러 이후 방문객들의 관리는 더 까다로워 졌다. 보안을 위해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되지만 외국인들에게 유난히 까탈스런 수위를 만나면 기분이 언짢게 된다. 기자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외신기자센터를 수위 얼굴을 익힐 정도로 자주 들락거린다. 그런데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까다롭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그들을 보면서 혹시 외국인이라고 차별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최근 뉴욕에 있는 법무법인 듀이 발렌타인에서 생긴 '개고기' 사건은 외국인 차별이 미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발렌타인은 소속 변호사만 5백72명이나 되는 세계적인 로펌이다. 이 회사 런던 지사에서 근무하는 한 변호사가 애완견 입양을 요청하는 노트에 "제발 중국 레스토랑으로는 보내지 말아달라"는 e메일을 보낸 것이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 레스토랑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개고기를 먹는 아시아 문화를 싸잡아 욕보인 e메일이었다는 점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변호사 협회와 법과대학원에 다니는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은 발렌타인에 일제히 항의성 편지를 보냈다. 발레타인 소속 아시아계 미국인 변호사 몇명은 이직할지 모른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발레타인은 작년말 어느 만찬에서 소속 변호사가 아시아계의 특유한 영어 발음을 조롱조로 흉내내 비난을 산 적도 있었다. 이 회사의 모톤 피어스 공동 회장은 즉각 사과했지만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미국에 처음 온 사람보다 다만 1~2년이라도 더 산 사람이 인종차별을 더 느낀다고 한다. 살면 살수록 백인들이 쌓아놓은 두터운 벽을 실감한다는 얘기다. 용광로 문화를 자랑하는 미국 사회가 그들까지 완벽하게 껴안으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