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해결사'로 떠올랐던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노무현 정부의 2기 경제부총리로 선임됨에 따라 향후 경제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신임 부총리는 10일 "성장이 우선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쳐낼 것은 쳐내야 한다"고 밝혀 전임 김진표 경제부총리와는 달리 경제체질 강화에 본격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경제정책을 펴는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노무현 정부 경제팀의 경량감(輕量感)에 무게를 얹어주기 위한 '총선용 얼굴마담'으로 징발됐다는 관측도 있어 이 부총리가 자신의 색깔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당장 내수회복이 급선무 이 부총리는 경기가 사상 최악이었던 외환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나 상승세로 돌아섰던 2000년 초에 재경부 장관을 맡았다. 당시는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안정에 몰두할 수 있었고 경기에는 손을 대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상황은 △극심한 내수소비 침체 △신용불량자 급증 △카드채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 △환율 급변동 △물가상승 우려 등 복합적인 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부총리가 "요즘 같은 경제상황에서 솔직히 (부총리) 하기 싫다"고 말할 정도로 총체적인 위기다. ◆ 총선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부총리는 LG카드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과 외환시장 개입에서 비롯된 환율 불안을 잠재우는데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가 이 부총리를 낙점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불안을 안정시킬 최적임자라는 점을 중시했다는 것만 봐도 새 경제팀의 정책은 '시장 안정' 쪽에 무게가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는 이 부총리가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자 문제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다는게 재경부 안팎의 관측이다. 특히 3백7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 문제는 총선 '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새로운 경제팀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묘수를 짜낼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 정부 경제팀내 불협화음 우려 이헌재 경제팀은 주요 경제정책에서 김진표 경제팀보다 훨씬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부총리가 청와대의 제의를 수락하기 앞서 경제정책 수립 및 운용과 관련, 청와대 간섭을 최소화하는 대신 '최대한의 자율권'을 보장받았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이 부총리가 해결해야 할 현안들 가운데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과 '기업규제 완화' 부문에서 정부내 대표적인 '노무현 코드인사'로 분류되는 김대환 신임 노동부 장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과 직접 맞부딪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친노(親勞) 편향으로 분류됐던 정책들이 어떻게 조율될지도 관심사다. 이 부총리(행시 6회)보다는 후배인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13회)과 권오규 정책수석(15회) 김영주 정책기획비서관(17회) 등 옛 경제기획원 출신들로 짜여진 청와대 내 정책기획 라인이 이 부총리와 순조로운 화음을 내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승윤ㆍ김수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