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882년(고종 19년)경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이 특허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처음으로 주장하였으나 제도화되지 못하다가 청일전쟁 및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극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을 무렵, 일본과 미국이 시장지배수단으로서 미?일간에 '특허권 등의 보호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우리나라에 특허법의 제정 압력이 가해짐에 따라 1908년 8월 12일(순종 2년)에 칙령 제196호로 '한국특허령'을 공포했다. 이 특허령에 의해 허여된 최초의 특허 1호는 정인호라는 사람이 취득한 '말총모자'에 관한 특허. 그러나 이와 같은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우리나라의 자생력으로 만들어진 특허법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말총모자가 최초의 특허가 될 수 없다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허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특허원이 성립된 것은 8.15 광복 이후인 1946년 1월 22일. 같은 해 10월 5일 미군정법령 제91호로 일본의 특허제도와 미국의 특허제도를 혼용한 특허법을 제정.공포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특허법이다. 이 특허법에 의한 대한민국 발명특허 제1호는 1947년 2월 14일 특허출원 제368호로 출원되어, 1948년 6월 20일 공고되고 1948년 11월 20일 특허받은 "황화염료 제조법"으로, 출원인은 중앙공업연구소장, 발명자는 이범순.김찬구이다. 이 발명특허의 명세서 원문에는 "본 발명은 '픽크라민'산 또는 그 염류를 '디오' 유산 '소다'와 다유화 소다의 혼합수용액에 첨가하여 단시간 반응시킨 후, 이하의 공지법에 의하여 침전.여과.건조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유화염료제조법에 관한 것인데, 그 목적은 품질우량한 염료를 저렴한 생산비로 용이하게 수득하는데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특허(patent)라는 단어는 원래 공개된 편지라는 뜻의 라틴어 'litterae patentes'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들 공개된 편지들은 중세 봉건군주가 권리와 특권을 부여하는데 사용되어 왔으며, 황제의 인장이 찍힌 편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권리와 특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최초의 특허체계는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발명특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Utynam 의 '존'이란 사람에게 주어진 것으로 1449년 그는 영국에서 과거에 알려지지 않았던 유리 제조기술을 개발하여 20년간의 독점권을 얻었다. 존은 독점권에 대한 대가로 영국 국민에게 그의 기술을 가르치도록 요구받기도 했다. 즉, 특허법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게 어느 일정 기한 동안 그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그만이 누릴 수 있는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함과 동시에, 이런 권리를 위하여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공개하도록 함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기술을 보고서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실시하면서 산업적인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서기 1421년에 세계 최초의 특허권이 주어졌는데 필리포 브루넬레치라는 설계사 겸 발명가에게 Duomo of Florence라는 유명한 돔(Dome) 건설을 위해서 백색 대리석 운송선에 대해 주어진 특허가 바로 세계 최초의 특허권이다. 또한 유럽대륙에서는 700여년 전에 발명자에 대해 일정기간 발명을 전용하는 권리를 부여한 사실이 있는데, 1236년 '다색무늬직물'에 관한 특허가 세계최초의 특허라고도 알려져 있어 세계 최초의 특허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