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연설문이 대체로 무난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 국어 생활의 전범으로는 적절치 못하다" 김희진 국립국어연구원 부장은 13일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한말연구학회(회장 조오현)가 주최하는 '한국인의 한국어 사용 실태와 21세기 한국어 정책의 개선 방향'학술대회에서 최근 2-3년간 각종 행사에서 나온 대통령이나 장.차관의 연설문을 중심으로 국어 사용의 실태를 검토하고 단어 사용 면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분석한다. 김 연구원은 '국정 연설문의 단어 사용 실태'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단어 선택 면에서 볼 때 국정 연설문은 대체로 무난하다"고 전제하며 "그러면서도 적절한 말을 찾아 쓰려는 노력이 부족해 잘못 쓴 예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첫번째 예로 '부실 가능성이 예견될 경우''행정과 관련된 부패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여' 등에 사용된 '가능성'을 들었다. 그는 "가능성은 '일이 장차 실현될 수 있는 성질'로, 바람직한 현상이나 원하는 바를 기술할 때 쓰는 말"로서 "부실, 부패, 전쟁 발발 등의 경우에는 '가능성' 대신 '우려' '걱정' 또는 '소지' '여지' 등으로 써야 상황에 맞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김연구원은 '정책 기조 면에서는 기존(종전/종래의)의 농도 규제 중심의 사후처리 정책을 총량 관리를 통한 사전예방 정책으로 전환했고''기존(현존하는)의 영세한 재활용 업체가 단기간에 충격을 받지 않도록''기존(그전에/이전에)에 출제된 문제들을 다소 변형한 문제들이 있다''원단 지구에선 기존(이미/벌써)에 대림.LG.풍림등이 분양을 마쳤습니다''기존(기성) 정치권에 큰 빚이 없다고 한 대목''기존의(불필요) 매장에서 고르기보다는 자신의 결혼반지를 스스로 디자인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등 문장에서 사용된 '기존''기존에''기존의' 단어 뜻도 지나치게 확장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이 과거, 현재를 넘나들며 거침없이 쓰이고 있다"며 "말하는 이가 각 상황에 맞는 적합한 단어를 찾아 써서 그 내용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도 '기존'하나에 지나치게 여러 뜻을 얹어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연구원은 "너무란 정도가 지나쳐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부정적 단어"라며 '아주''꽤''무척''퍽''썩''참으로''상당히' 등의 뜻으로 '너무'가 사용된 것도 적절치 못하다고 분석했다. 그러한 예로는 '퇴근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너무 일을 열심히 합니다''여기도 직원들의 비율이 남녀가 적당히 섞여 있어 너무 좋습니다''한.미양국은 이제 서로에게 너무도 중요한 경제 협력의 파트너가 되고 있습니다''여러분께서 너무나 잘 아시는 것처럼' 등의 문장이 있었다. 그는 또한 '저를 비롯한 우리 정부 구성원의 역할은 대통령과 새 정부의 국정비전을 국민과 함께 구체화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에서 사용된 '비롯한'도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연구원은 "'비롯하다'란 여럿 가운데서 처음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연사가 '자신을 비롯한'이라 하면 청중 위에 군림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그외에도 '발굴하다''버금가다''유해성 여부''역할''역임하다''와중에서도''제일 먼저''증대시키다''확대했다''회자되다' 등의 단어가 빈번하게 본뜻과 어긋난 채 사용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kyung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