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損保 과당경쟁 두고볼일 아니다..金星泰 <연세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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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카드사 부실 사태는 우리 경제에 두 가지 큰 교훈을 던져 주었다.
먼저 '건전한 경쟁'은 시장효율을 제고하고 소비자 편익을 증가시키는 양약(良藥)이지만,'무분별한 과당경쟁'은 경제 전반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독약(毒藥)이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정부의 시장 감시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절감케 한다.
정부가 '시장실패'를 예견하고 선제적 개입을 했더라면,카드 사태는 사전에 차단될 수 있었을 것이다.
금융시장의 시계바늘을 지난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으로 돌려보자.당시 노태우 정부는 기존 6개 생명보험사의 네 배가 넘는 27개 생명보험사 설립을 무더기로 허용했다.
은행업도 대동,동남,동화 등 3개 은행을 출범시켰다.
그 결과는 어떤가? 신설 27개 생명보험사 중 절반인 14개와 신설 3개 은행 모두가 부실화돼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고 말았다.
현재 자동차보험 업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당경쟁 양상은 최근의 카드 사태와 과거 은행과 생명보험 구조조정의 뼈아픈 교훈을 떠오르게 한다.
먼저 보험사 난립의 측면을 보자.10개 회사가 경쟁하고 있는 자동차보험 시장에 3개 직판보험사가 신설된 데 이어,일부 기존 보험사들도 온라인 저가 상품 출시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진입규제 완화가,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시장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침체 시장에서 경쟁기업의 숫자만 늘어나면,출혈경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장차 손해보험 산업 전반의 부실을 초래할 문제들이 곪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직판보험사들의 편법·불공정 경쟁으로 시장질서가 왜곡되고 있다.
낮아진 최소 자본금 규정에 의해 설립된 직판보험사들은 재무건전성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수한 자동차보험의 상당 부분을 재보험사에 넘기고 있다.
대규모 손실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재보험제도가 직판보험사의 재무건전성 기준을 맞추기 위한 회계적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직판보험사들은 손해율이 낮은 수도권 지역의 특정 계층만을 집중 공략해,결과적으로 다른 지역의 잠재고객을 차별하고 있다.
둘째,업계 전반의 제살 깎아먹기식 가격 인하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브랜드와 서비스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형 보험사는 직판보험사의 저가 공세에 맞서 생존을 위한 가격 인하가 불가피할 것이다.
약 15%의 가격 차이 때문에 직판보험사에 우량 고객을 빼앗기고 있는 대형 보험사도 시장 방어를 위해 가격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직판보험사와 다른 보험사들이 가격 재인하에 나서는 덤핑의 악순환이 가시화될 우려가 크다.
소비자와 보험회사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데도, 경쟁만을 의식한 가격 인하가 계속되는 이른바 'Bertrand Trap(버트란드 함정)'에 보험업계가 빠져드는 위기상황이다.
셋째,무분별한 가격경쟁은 결국 계약자와 기존 보험사 주주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이다.
보험사가 파산하면 나머지 보험사들이 자금(제3자 피해자보호 기금)을 갹출해 파산사의 의무보험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된다.
파산 부담이 기존사의 계약자와 주주들에게 전가돼 부실의 도미노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작금의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적신호'는 금융당국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과거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어야 한다.
그 동안 손해보험업계를 제외한 은행·증권·생명보험 등 대부분의 금융권은 부실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다.
이제 손해보험업계도 규제완화라는 명분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공정경쟁과 시장의 안정에 초점을 맞춘 유연한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금융기관의 경우,제조업과 달리 한 회사의 경영 위기의 여파가 다수의 소비자와 국민경제 전반으로 파급됨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엄정한 신규 진입자 심사와 면밀한 모니터링 체제 구축을 통해 부실의 불씨를 사전 차단하는 정부의 건전한 시장개입이 절실히 요구된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자는,과거의 우를 반복한다.
kimst007@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