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대해 의사 변호사들이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4일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공동학술세미나를 열어 '법대와 의대 지원 편향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토론자로 나온 김진백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선망의 대상인 의사 변호사들이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 묻자 박재승 변협 회장은 "과다한 의대 편중은 이공계 약화를 초래하고 법대 쏠림은 인문학의 수준저하를 가져와 국가경쟁력 제고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우리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재정 의협회장은 "우리 의사는 잘 외우기만 하면 돼요"라며 우수인력의 지나친 편중현상이 인력낭비라고 지적한 다음 "변호사도 육법전서만 외우면 되지 거기도 최고 엘리트는 필요없죠?"라고 하자 박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즈음 의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의 '배금주의'를 보여주는 통계자료들이 소개되자 참석한 의사들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전국 1천여명의 의대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윤용범 서울대 의대 교수는 "56%가 수련을 마친 직후 1억원 안팎의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며 "44%가 의사에 대한 경제적인 대우가 더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의사는 "30년 간 의대 교수를 한 나도 연봉이 1억원이 안 된다"며 신세대 의대 지망생들의 왜곡된 직업관과 세태를 꼬집었다. 또 다른 의사는 "의사는 단순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라면서 "의사공급이 갈수록 넘쳐나는 상황에서 돈만 바라보고 지금 의사를 지망하는 이들은 졸업할 때쯤 낭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공계 엘리트에 대한 보상이 너무 부실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박태범 변협 부회장은 "휴대폰의 한글자판 소프트웨어인 '천지인 한글'을 개발한 연구원에게 지급됐던 보상금이 고작 21만원이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성토했고 박인숙 울산대 의대 교수는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황우석 박사가 4천만원짜리 전셋집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허탈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이공계 전반의 균형발전이 이뤄져야 의학분야 수준도 높아진다"면서 "의대와 이공대는 공동운명체이며 이공계가 잘 돼야 나라 전체가 산다"라고 깅조했다. 이공계 지원대책에 대해 김진백 KAIST 교수는 "기술 개발 이익 중 50%는 개발자에게 돌아가도록 제도화하고 과학기술창업대학과 단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직업의 소명의식 제고 등 의식 개혁 작업과 함께 고교 평준화 제도를 폐지하고 과학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등 사회전반의 우수인력 수급 시스템이 정비돼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