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16일 본회의를 열어 네 번째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시도한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16일에는 반드시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데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열린우리당이 농촌 출신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막판 설득에 총력전을 펴고 있어 일단 비준안 통과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높다.


그러나 농촌 의원들 상당수가 피해 농민에 대한 정부측의 추가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비준안 처리까지는 진통이 불가피하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까지 한국을 배우자고 했는데, '한국이 이 정도냐'는 말을 요즘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죽겠습니다."


"이제 멕시코는 한국이 FTA를 맺자고 애걸복걸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중남지 각국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 상실은 문제도 아니다.


한때 벤치마킹 대상이던 'KOREA'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중남미 시장이 한국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칠레 멕시코 브라질 과테말라 등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KOTRA 관계자들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국회의원들이 한 번이라도 이곳에 와 봤다면 비준을 연기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16일에는 반드시 통과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원식 대우일렉트로닉스 칠레 법인장은 "국회가 한ㆍ칠레 FTA 비준을 다시 연기시켰던 지난 9일 새벽(현지시간)까지 뜬 눈으로 인터넷을 지켜 봤다"며 "이곳에선 칠레 상원이 이미 한ㆍ칠레 FTA를 비준해 줬는데 속았다는 실망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FTA가 비준되면 제품 가격도 낮추고 물량도 늘리려고 했었다"며 "또 다시 비준이 연기되면 칠레 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 틈을 타 중남미 생산공장에서 무관세로 들어오는 필립스 파나소닉 소니 등의 제품이 유통매장 내 A급 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며 "대우 삼성 LG 등 각 업체가 유통매장 사수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경쟁력 유지를 위해 FTA 비준 때까지 가격을 내린 상태여서 자칫 비준이 다시 연장될 경우 출혈이 불가피해진다고 전했다.


남미 최대 시장인 브라질에선 '한국을 다시 보자'는 부정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종운 KOTRA 상파울루 무역관장은 "룰라 대통령을 비롯한 브라질 정부 관리들은 한국의 70년대 경제개발 모델을 배우자고 공개적으로 말해 왔다"며 "그러나 FTA가 지연되면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목소리마저 잦아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 관장은 "남미에선 FTA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비(非) FTA국 제품들은 그야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가 됐다"며 "칠레와의 FTA는 브라질이나 멕시코 같은 거대 시장으로 가는 징검다리인데 왜 넓게 보지 못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32개국과 FTA를 맺고 있는 멕시코에선 한국의 이미지가 "사상 최악"이라는게 현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국과는 FTA를 맺을 필요도, 맺을 뜻도 없다"는 말이 고위 관료들의 입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홍준식 삼성물산 멕시코 지점장은 "이곳 정부와 기업들은 FTA 체결국과의 거래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면서 "일본과 FTA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한국과는 FTA를 맺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홍 지점장은 "남미 국가 가운데 한국 기업이 활동하기에 가장 척박한 곳이 바로 멕시코"라고 덧붙였다.


한국산 제품의 피해도 더욱 커지고 있다.


김건영 멕시코시티무역관 부관장은 "멕시코는 FTA 국가 제품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는데 그치지 않고 FTA를 맺고 있지 않은 나라 제품에 대해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있다"며 "관세가 35%로 높아진 타이어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더욱이 멕시코는 1백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전력 플랜트 등 정부 조달시장에는 앞으로 비FTA 국가의 참여를 제한할 방침이어서 한국 기업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조달시장을 겨냥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멕시코와의 FTA를 유리하게 타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구애작전을 펴고 있다.


지역별로 기부행사와 문화행사를 열어 현지인들과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


김철희 KOTRA 과테말라 무역관장은 "한국에선 FTA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곳에선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존의 조건"이라며 "한·칠레 FTA는 시험으로 치면 가장 쉬운 문제인 데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남미 시장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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