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상선 하멜 일행이 난파돼 제주도에서 포착된지 올해 3백51년이 된다. 은자의 나라 '코리아'가 처음으로 유럽에 알려진 것은 '하멜 표류기'에 의해서이다. 하멜은 14년간의 조선 체류 기간에 견문한 것을 자세히 적어 귀국후 조선실정보고서로 만들어 네덜란드 상관(商館)에 제출했다. 하멜의 '조선 표류기'에는 무역선의 서기답게 당시 조선의 경제사정을 많이 적고 있다. 우선 하멜은 조선인들은 수의 계산을 가는 막대로 한다고 적었다. 또 조선인들은 상업부기를 몰랐기 때문에 수입과 지출에서 얼마를 벌었으며 손해났는지를 기록하는 대차대조표를 만들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1650년대 이미 고도화된 상업부기를 갖고 있던 네덜란드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독 복식부기도 없었던 것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반면에 일본은 나가사키(長崎)항을 개항하고 네덜란드 상관을 두고 있었던 데다 유럽과의 무역도 활발했다. 이미 조선은 세계화의 낙오자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에서 서양의 철학과 수학을 처음 수용한 것은 일본의 네덜란드 학자들이었다. 철학이라는 단어도 네덜란드 학자 니시아마에(西周)가 번역어로 만든 것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에 가서 '방법서설' 등 근대 합리주의 철학을 만들었고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선박회사의 주인이기도 했다. 17세기 암스테르담은 런던과 함께 동서무역과 상권의 중심이었다. 번창하던 해상무역은 위험에 대한 확률 계산을 발달시켰고 이는 보험업의 번영으로 이어졌다. 갬블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바로 보험산업의 뼈대를 이루었다. 막스 베버는 합리주의 정신이 수학이나 철학에 앞서 상인들의 복식부기에서 비롯됐다고 역설했다. 근대의 합리주의 정신은 투기적 치부탐욕이 아니라 대차대조표에 대한 리스크 관리 감각을 가지고 불확정성에 대비하는 '현려(賢慮)'라고 가르쳤다.베버는 자본주의에 '정신'이 있음을 강조하고 그것이 프로테스탄트적인 에토스라고 했다. 합리주의 철학의 대가 파스칼은 도박에 미친 그의 후원자를 위해 갬블의 확률법칙을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인간은 도박의 승률이나 오즈(odds), 즉 실패율을 미리 예측하기를 원한다. 파스칼은 '팡세'를 쓰면서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의 문제는 이성에 의해 회답을 얻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코인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유신론,뒷면이 나오면 무신론으로 하는 일종의 '내기'와 같다고 말했다. 유신·무신의 게임은 어쩔 수 없이 5 대 5이다. 경건한 생활이냐 방탕한 인생이냐는 게임에서 유신론자는 어떤 경우라도 크게 낭패할 일은 없다. 그러나 무신론에 내기를 걸었을 경우 만에 하나 신이 존재한다면 영원히 천벌을 받을 것이 아닌가. 파스칼이 팡세에서 스스로를 유신론에 의탁했던 의사결정은 이같은 확률과 리스크관리적 사고의 결과였다. 파스칼이 게임을 말했다고 해서 그 것이 도박적 인생이나 도박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것은 물론 전혀 아니다. 로또복권 등 갖가지 복권 상품이나 카지노는 일확천금의 대표적인 사례다. 누가 수십억 거금에 당첨됐다는 소식에 나도 걸어보겠다고 들뜨지만 엄청난 수의 게임 낙첨자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 4백만명의 신용불량자나 눈이 먼채로 시장폭주에 몸을 맡겼던 카드사 또한 합리적 리스크 관리에 무지했던 도박꾼과 다를 것이 없다. 리스크 불감증의 또 다른 사례를 들라면 그 대표적인 것이 대북 햇볕정책이었다. 북으로 무작정 햇볕을 보내면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가정에는 역설적으로 북한이 '변하지 않기 위해 변화하는 척만 하는'데 대한 리스크관리 의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거금 당첨(통일과 화해)의 요행만 쳐다보며 가산을 탕진하는 '갬블'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에도 합리적 계산능력이 결여되는 뼈아픈 현실을 보게 됐다. 글로벌 세계화냐 '친북'자주냐의 선택을 동전 던져 결정하는 식의 리스크 불감증이 국가운명의 합리적 선택을 해치고 있는 것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