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이 한 발 물러섰다. 16일 외환시장에서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째 지켜온 1천1백60원선이 무너졌는데도 외환당국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늘상 나오던 구두개입도 없었고 달러를 사들이는 강도도 현저하게 약화됐다. 이에 대해 시장 일각에선 신임 이헌재 부총리의 업무파악이 끝날 때까지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자제하는 '작전상 후퇴"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대부분 시장 참가자들은 정부의 환율방어 능력에 바닥이 드러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지나친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도 한계에 달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 시장엔 '팔자' 주문만 가득 이날 외환시장에는 달러 매도주문만 넘쳐났다. 간간이 국책은행을 통해 시장개입성(환율하락 방어용) 매수주문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매도주문을 틀어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심리적 저지선인 1천1백60원선이 4개월여 만에 맥없이 무너졌고 이는 역외 달러 매도주문을 불러왔다. 외국인이 주식을 2천억원어치 이상 순매수했고 국내 수출기업들이 보유 달러를 팔아 환율하락을 부채질했다. 시중은행 딜러는 "1천1백60원선이 깨지면서 추가하락 예상이 많아졌다"며 "당국에서 특별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는 한 당분간 이같은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환율방어 한계에 왔나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선을 좀 더 낮추더라도 국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오래 버텨내긴 힘들 것으로 시장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선진7개국(G7) 회담에 이어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마저 최근 공개적인 달러 약세 지지의사를 표명했기 때문.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수세가 되살아난 점도 환율이 되오르기 힘든 요인이다. 게다가 연초부터 물가마저 오름세여서 외환당국의 운신 폭이 더 좁아지고 있다. 외국계은행 딜러는 "지난해 10월 중순에 외환당국이 1천1백50원선이 무너진 환율을 1천2백원대로 밀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수출입물가가 내림세였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물가마저 불안해 외환당국이 과감한 시장개입을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1월 수입물가는 국제 원유값 상승으로 4개월째 올랐고 전년 동월에 비해선 3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 NDF 평가손 걱정 환율이 6일 연속 내리면서 정부의 차액결제선물환(NDF)시장 개입 물량에서 막대한 평가손을 볼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이후 정부가 사들인 NDF의 평균단가는 대략 1천1백80원선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환율이 내려갈수록 손실이 불어나는 구조다. 외환시장에서는 현재 정부가 들고 있는 NDF 매입잔액을 1백50억달러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