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초·중·고교의 우등상이나 개근상 부상은 십중팔구 사전(辭典)이었다. 친지들의 졸업ㆍ입학 선물도 비슷했다. 어려서 한자를 배운 세대는 초등학교 졸업식 때 옥편을 받고 곧 이어 '축 입학'이라고 쓰여진 영어사전을 받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이 영한사전은 좀더 두꺼운 것으로 바뀌거나 영영사전으로 격상(?)됐다. 중장년층 가운데는 영어사전을 통째로 뗀답시고 만원버스에 흔들리면서도 사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심지어 다 외운 페이지는 뜯어 씹어먹는다고 호기(?)를 부린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얇은 중학생용 사전의 e를 못넘기는 것같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이들의 사전은 손때가 묻고 책장이 닳아 너덜너덜해졌다.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사전도 종이사전에서 전자사전으로 바뀐다는 소식이다. 종이사전 매출은 99년부터 연간 4∼5%씩 줄어드는 반면 전자사전 판매는 2000년부터 급증,2001년 20만대에서 지난해엔 50만대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백화점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모들이 자녀에게 주고 싶어하는 선물 1위에 꼽혔다고도 한다. 전자사전의 경우 종래엔 어휘 설명이 너무 간단하거나 불충분했지만 지금은 종류에 따라 영한사전은 물론 한영ㆍ일한ㆍ한일ㆍ중한ㆍ한중 사전 등 5∼11가지 사전의 내용을 송두리째 싣고 일상회화 토익문제 관용어구 영어유의어를 곁들인 것까지 나왔다. 두께는 1cm 이하로 얇아진 반면 화면은 커지고 충전형과 컬러모니터,녹음 MP3 FM라디오 기능이 부가된 것,펜터치식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다. 부피가 작으니 휴대하기 좋고 영어 일어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그러나 종이사전이 권당 3만원 안팎임을 감안할 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담았다곤 해도 20만∼40만원이란 값은 만만하지 않다. 게다가 종이사전의 경우 부피가 커 갖고 다니기 어렵지만 그래도 한 단어를 찾다 보면 위 아래로 다른 단어도 살펴보게 되고,한번 본 곳에 밑줄을 그어놓으면 재차 들췄을 때 "아,찾았던 건데 깜박했네" 싶어 다신 잊지 않으려 애쓰는,편리함만으로 잴 수 없는 장점을 지닌다. 졸업ㆍ입학 선물로 전자사전도 좋지만 종이사전도 괜찮다 싶은 건 바로 이런 까닭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