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누드집의 상식 .. 주태산 <맥스무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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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ts@maxmovie.com
기자들은 대개 젊다.
현장을 뛰는 기자들은 20대 후반부터 30대가 중심이다.
외견상으로는 이들이 맞상대하는 거대 정부의 노회한 관료들이나 뿌리깊은 사회 기성세력에 비해 전문성과 경험 면에서 어림없어 보인다.
20년 전 수습기자로 출발할 때 가장 두렵고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기자가 어떻게 정부와 사회의 잘잘못을 가려낼 수 있을까.
무슨 능력으로 권력과 권위 뒤에 숨겨진 음모와 비리,과오와 모순들을 간파해낼 수 있나.
1972년 6월17일 새벽.
미국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불꺼진 건물에 5명의 괴한이 스며들었다.
그들은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을 따고 들어가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경비원에게 발각됐다.
경찰은 단순침입 사건으로 브리핑했고,백악관도 '3급 강도침입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지의 두 젊은 기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대선을 앞둔 시점에 외부인들이 야당 선거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했고,백악관은 서둘러 논평을 내놓았는지 모든 것이 상식에 어긋났다.
결국 2년여의 집요한 취재 끝에 워터게이트 사건은 실체를 드러냈고,닉슨은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수습기자의 질문에 선배 언론인은 "건전한 상식을 가지면 된다"고 했다.
상식이란 전문지식이 아니다.
정상적 일반인의 사리분별력에 불과하다.
임금님이 아무리 멋진 옷을 입었다고 주장해도 벌거벗었다고 볼 줄 아는,어린아이처럼 소박한 안목이다.
만약 '탁' 하고 책상을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를 의심치 않았다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영영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의 성 상품화에 대한 최대 희생양인 종군 위안부 문제를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하겠다"는 한 여배우의 감언에 흔들렸다면 누드집은 졸지에 국민적 역사교육 자료로 둔갑했을 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비상식이 훨씬 많다.
그래서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도 상식은 그렇게 흔한 게 아니라고 갈파했을 것이다.
게다가 비상식적일수록 권위와 현란한 수사(修辭)의 힘을 빌려 부단히 상식을 속이려 드는 법이다.
언론이든,국민이든 건전한 상식으로 무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