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게임이론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사례 중의 하나가 '용의자의 딜레마'이다. 두 명의 범죄 용의자가 각각 다른 방에서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혐의를 부인하면 둘 다 아주 적은 벌금을 받게 된다. 둘 다 혐의를 시인하면 약간의 벌금을 받는다. 그런데 한 사람만 혐의를 시인하고,다른 사람은 부인하는 경우에는 혐의를 시인한 사람은 벌금이 없고,부인한 사람은 매우 많은 벌금을 받는다.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잘 생각해 보면 결국 두 사람 모두 혐의를 시인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혐의를 시인하고,자기만 부인하면 자기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상대적으로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먼저,두 사람 모두를 생각할 때 둘 다 혐의를 부인하고 약간의 벌금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는 둘 다 혐의를 시인하여 보다 많은 벌금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혐의를 시인하는 의사결정이 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의사결정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점이다. 지난번 새로운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시장은 철없는 어린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다'라고 한 말이 화제를 낳았었다. 당시 부실 카드사 지원에 대한 일부 금융회사의 비협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해석되었다. 부실기업에 대한 채권금융기관의 행동 양식도 용의자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다. 즉,두 개의 은행이 부실기업에 대해 추가적인 지원 여부를 고려하고 있다고 하자.만약 두 개의 은행이 합심해서 부실기업을 지원한다면 부실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두 은행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은행만 지원하고 다른 은행이 지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부실기업은 더욱 부실화되고,자기 은행의 손실만이 대폭 확대될 수 있다. 다른 은행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개별 은행들은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하고,결과적으로 두 은행 모두 지원하지 않게 된다. 이는 은행들이 비협조하는 것이 어린애들의 장난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경제의 많은 문제가 '용의자의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다. 모두 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와는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보자. 먼저,개별 경제주체들에게 자기보다 전체를 우선하라고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 '용의자의 딜레마'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반복 과정에서 자기 이익만을 고려하는 의사결정이 결국 자기에게 피해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배우기까지에는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 우리 경제는 반복 게임을 즐길 만큼 한가한 상태가 아니다. 보다 사회적 손실이 적은 경우는 개별 의사결정 주체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십이 있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그 리더가 이해관계자들을 적절히 중재하여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있는 시장경제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주체는 정부다. 그러나,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시장에서 신뢰받는 리더십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에 보여준 정책 비일관성과 예측불확실성 때문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리더십이 무너진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리더십은 정부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을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할 때만 생겨난다. 사안과 이해관계에 따라 우왕좌왕하거나,실제로는 아마추어이면서 프로인 척하는 리더십은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팔을 비트는 리더십이 아니라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경제 리더십의 형성이 시급한 과제다. shkang@sungsh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