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조짐이 심상치 않아요.' JP모건 시티 등 외국계 금융사들이 최근 하이닉스 채권을 잇따라 사모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하이닉스와 국내 채권단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조조정촉진법 적용을 받고 있는 하이닉스의 경우 채권도 의결권 행사가 허용되기 때문에 채권 매입은 일반 상장회사의 주식 취득과 똑같은 효과를 가진다. 일단 하이닉스의 조기 정상화를 겨냥한 선취매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채권단의 분석이지만 하이닉스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린 투자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외국계 금융사들이 매집한 채권은 줄잡아 8천억원. 하이닉스의 금융권 총 부채(장단기 차입금+회사채) 2조6천억여원의 30%에 달한다. 이를 의결권으로 계산하면 하이닉스의 주요 주주인 외환 산업은행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향후 하이닉스의 정상화 및 매각 과정에서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누가 얼마나 샀나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조흥은행은 씨티 론스타 JP모건 등이 참가한 가운데 1천2백81억원 상당의 대출채권을 공개경쟁 입찰에 부쳐 JP모건을 낙찰자로 선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흥과 JP모건은 현재 씨티벤처와 협상이 진행 중인 하이닉스 비메모리(시스템IC)사업 매각이 완료되면 본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이에 앞서 씨티글로벌증권도 지난해 10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CFPI' '블랙원 유동화'라는 이름의 자산유동화 회사를 통해 4천9백53억원 상당의 회사채를 매입,7% 상당의 의결권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조정촉진법 적용을 받고 있는 하이닉스는 의결권이 채권과 주식을 합산해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다 우리은행과 자산유동화 업무제휴를 맺고 있는 리먼브러더스가 2002년에 사들인 1천6백51억원의 채권을 포함하면 외국계 금융사의 보유 채권은 8천억원에 육박,의결권도 10%를 넘게 된다. ◆왜 사들이나 이처럼 하이닉스 채권이 해외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액면가의 30% 수준에서 거래되던 채권값은 최근 70%선을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올들어 반도체 경기가 호조를 띠고 있고 하이닉스도 2분기 연속 흑자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채권을 편입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하이닉스의 장래가 아직 불투명하고 2006년까지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도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투자금액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향후 하이닉스 처리가 진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대한전선이 보유 채권을 앞세워 인수전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외국계가 '의결권 있는' 채권을 매집해 향후 매각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내 일부 채권은행도 이 같은 가능성을 경계하며 보유 채권을 더 이상 외국계에 매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