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냉전시대 미국 CIA와 소련 KGB 간의 스파이 활동이 군사·외교에 관한 정보 수집에 집중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스파이의 업무와 역할이 바뀌었다.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espire)가 어원이라고 하는 스파이(spy)가 산업현장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군사력과 함께 산업경쟁력이 국력으로 평가되면서 각국은 정보요원들을 동원해 산업스파이 예방에 총력을 쏟고 있다. 미국은 CIA 외에 FBI를 활용하고,러시아는 KGB 후신인 FSB(연방보안국)가 산업스파이 차단에 나섰다. 세계적인 정보수집 능력을 인정받는 영국의 MI,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물론이고 중국의 국가안전부,일본의 내각정보 조사실도 자국 산업 보호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국가정보원 역시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조직과 인력을 대폭 보강해 산업정보 보호와 산업기밀 유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첨단기술 보호를 국가안보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여러번 산업스파이를 적발한 국가정보원이 이번에는 '산업스파이 식별요령'이라는 실무지침서를 내놓았다. 다른 직원의 업무에 대해 수시로 질문하거나 사진 장비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사람,업무를 빙자해 주요 기밀의 자료를 복사·보관하는 사람,주요 부서에 근무하다가 이유없이 갑자기 사직을 원하는 사람 등이 산업스파이로 의심할 만한 요주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기업의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의 유출은 심각한 지경이다. 산업기술진흥협회의 최근 조사를 보면 자체 연구소를 가진 기업 3백94곳 중 15%가 산업기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IT 등 첨단산업일수록 기밀 유출이 심하고 중국 대만 등 경쟁국에 팔아 넘기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정보수집 수법도 도·감청과 초소형 사진기 사용은 기본이며 중요 정보가 들어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복사하고 심지어는 해킹도 서슴지 않는다. 국경 없는 경제전쟁 시대에 산업스파이를 막는 일은 이제 기술개발 못지 않은 국가적인 과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