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골프클럽 제조사 캘러웨이는 지난 91년 '빅버사(Big bertha)'로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다른 회사들은 서로를 벤치마킹하며 어떻게 하면 더 멀리 보낼 수 있는 고성능 클럽을 만들까에 집중했다. 가장 반발력이 좋은 소재를 찾는데 회사의 온 역량을 집중했다. "3백야드를 날릴 수 있다"는 식의 마케팅에도 돈을 쏟아부었다.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캘러웨이는 달랐다. 경쟁자들의 이런 움직임에는 눈을 감았다. 대신 지금의 골프 클럽에 만족하지 못해 대안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관심이었다. 조사 결과 골프를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신 테니스를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러웨이 사람들은 그래서 '골프를 포기한 사람들이 왜 테니스를 선택하는가' 하는 화두에 집중했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들이 테니스를 택하는 이유는 '골프클럽의 헤드(머리)가 너무 작아서 공을 도저히 맞힐 수 없어서' 였다. 초보자도 쉽게 공을 맞힐 수 있는 머리가 큰 드라이버를 내놓으면 테니스장으로 떠나버린 비(非)고객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결과로 개발된 클럽이 바로 기존 골프클럽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헤드가 큰 '빅버사'다. 초보자의 수요가 급격히 확대됐고 기존 골퍼들도 캘러웨이로 골프클럽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누구나 공을 맞힐 수 있는 손쉬운 골프클럽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 경쟁자, 시장, 고객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의 시작이다. 가치혁신 이론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기업들이 경쟁영역으로 간주해온 6개 부문에서 전략의 초점을 바꾸면 비어 있는 시장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로, 캘러웨이 '빅버사'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 같은 산업 내 경쟁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에 있는 대안(alternative)까지 두루 살피는 방법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특정 산업 분야 내에서의 경쟁에만 열을 올리지만 가치혁신 기업은 영역을 넘나들며 새 시장을 찾는다. 두번째 방법은 특정 산업 안의 다른 전략집단을 살펴보는 것이다. 소니의 워크맨이 대표적 예다. 워크맨은 오디오의 음향효과와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부담없는 크기를 결합한 제품이다. 오디오와 라디오는 같은 전자산업 안에 포함돼 있지만 서로 경쟁자가 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워크맨은 휴대용 스테레오 시장을 완전히 새로 개척했고 오디오와 라디오 고객 일부를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자와 조깅하는 사람 등 새 고객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구매자 집단을 다시 규정하는 것도 가치혁신의 한 방법이다. 다국적 기업 필립스의 미국법인은 수은 함량을 대폭 낮춘 환경친화적 전구 '알토'(Alto)를 개발하면서 기업의 구매담당이 아니라 재무담당 임원(CFO)을 공략했다. 구매담당들은 당장의 비용 절감을 중시해 값이 싼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지만 기업의 재무를 총괄하는 CFO 입장에서는 폐기비용까지 포함한 전체 비용을 계산하는데 착안한 것이다. 네번째는 보완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새롭게 채택하는 방법이다. 전통적으로 서점은 책을 파는 비즈니스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미국의 '보더스'나 '반스 앤드 노블' 같은 회사들은 고객들이 서점에 들르는 이유가 학습하고 발견하는 즐거움 때문이란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은 고객이 서점에서 책을 선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가진 직원을 고용했다. 또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팔걸이 의자와 탁자, 소파를 갖췄다. 고객들이 책을 구매하기 이전과 이후 절차를 면밀히 분석,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다. 이들 업체는 창업 6년도 안돼 6백50개 이상 대형 서점을 보유하면서 미국 내 가장 큰 서적 체인으로 성장했다. 이와 함께 기능성 제품을 감성적 제품으로 전환하거나 감성적 제품을 기능성 제품으로 위상을 바꾸는 것도 가치혁신에 포함된다. 스위스 시계업체인 스와치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성 제품으로 인식되던 시계를 패션 액세서리로 바꿔 큰 시장을 창출했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시스코는 고속 데이터 전송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착안해 지속적으로 대용량 네트워크 장비를 개발, 성공한 기업이다. 피할 수 없는 대세를 분석하고 이에 대비한 것이다.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1999년 1ㆍ2월호에 게재한 '새로운 시장공간을 창출하는 방안(Creating new market space)'에서 "대부분의 경영자는 경쟁을 싫어하며 더 좋은 대안을 찾기 원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두 교수는 "여섯 가지 방법은 특별한 비전이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자료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