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변신의 계절 .. 姜萬洙 <디지털경제硏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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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나고 매화 꽃망울은 눈 속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의 추위와 눈보라를 이기고 잎보다 먼저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매화는 선비의 지조와 여인의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다.
사랑방에 매화 그림 하나쯤은 걸고 살았다.
매화를 지극히 아꼈던 퇴계 선생은 말년에 몸이 병들자 자신의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매화에게 보여줄 수 없다며 다른 곳으로 옮겨 심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세상은 지난번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불법자금 시비로 끝간데 없이 진흙탕 싸움을 하며 소란하다.
'차떼기'에서 시작해 '리무진과 티코'로, 다시 '티코와 세발자전거'로, 또 '소도둑과 닭도둑'까지 나가고 있다.
민초들이 보기에는 그 나물에 그 밥 같아 서글픈 마음은 차라리 웃고 싶어진다.
우리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너무 허망하다.
이런 와중에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으니 희망을 말하는지 또 다른 절망을 말하는지.나는 젊었으니 늙은 너는 물러나라,나는 전문가니 아마추어 너는 물러나라,나는 텃새니 철새 너는 물러나라 등 소리 모두 일리가 있어 헷갈리기만 한다.
젊다고 잘 되면야 가장 젊은 사람 시키면 되고,전문성이 있다고 잘 되면야 박사 갖다 놓으면 되고,텃새라고 잘 되면야 철새만 몰아내면 되겠지만 그게 된다면야 무슨 걱정 있으랴.
매화를 가까이 하며 입신양명보다 지조와 겸양을 앞세웠던 옛날 선비들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봄날이 올 때까지 차가운 겨울바람과 눈보라를 참고 견디며 학문에 정진하고 인격도야에 매진하는 매화 같은 고고한 선비들.지금 학문은 출세나 생계의 수단이 됐고 겸양보다 내로라하며 나서야 뭐라도 하나 걸치는 삭막한 세상이 돼 버렸다.
우리는 물질에서는 앞으로 살아왔지만 정신에서는 뒷걸음질하며 산 게 아닌가 하여 마음은 우울해진다.
지지하지도 않은 정권,비판하고 반대했던 정권이 들어서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소위 정무직 고위관료들을 본다.
그들을 부러워하고 축하하는 것을 보며 뜻이 맞지 않으면 정승 판서도 마다하고 향리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며 때를 기다리는 옛 선비들을 생각해 본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문지식에 더하여 민초를 사랑하는 따뜻한 가슴과 확실한 철학과 소신의 냉철한 머리가 필요한데 기술자 수준의 테크노크라트가 가당한 말인가.
컴퓨터가 많은 일을 대신해 주는 지금은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가 더 중요하다는데.
이 당 저 당 양지를 찾아다니는 정치인을 '철새 정치인'으로 욕하는데,지지하지도 않은 정권을 찾아다니는 고위관료들에게는 '철새 관료'라고 말하지 않는다.
관료에게는 '테크노크라트'가 있는데 정치인에게는 '테크노크라트'라는 말도 없다.
정치의 실망이 언어에도 배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매화의 자리에 '사쿠라'가 만발한다.
선비의 지조는 여자의 절개와 함께 세상살이에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돼 버린 것 같다.
변신은 능력이고 질투의 대상이지 질타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내로라'하고 나선 정치인들,'너로라' 하여 밀려 나온 고위관료들,물러난 자리에 되돌아온 테크노크라트들,공천에서 떨어졌다고 소란을 피우는 정치꾼들의 변신이 현란하다.
어릴 때 살던 시골동네 서재 뜰에 피던 매화가 생각난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잡초가 무성하고 퇴락하여 무너질 듯했다.
옛 선비들의 체취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즐겨하던 시구가 생각난다.
"봉황은 천 길을 날되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선비는 땅 한 모퉁이에 숨어 살지언정 주인 아닌 이를 섬기지 않는다(鳳 皐羽 翔于千兮 比梧不栖,士伏處于一方兮 比主不依)."
가고 있는 터널이 너무 어둡고 길기도 하다.
"여보게 도우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솔바람 한 줌 집어 가렴! 농담 말구! 그럼 댓 그늘 한 자락 묻혀 가렴! 안 그럼 풍경 소릴 들고 가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