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16일 국회비준을 받은데 이어 정부는 현재 싱가포르와 FTA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칠레와의 협상때 보여줬던 준비 미숙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어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 부처간은 물론 업계와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은 사안을 들고 시간에 쫓기듯 협상테이블에 나서는 관행이 여전한 탓이다.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된게 '수출품 원산지 증명'이다. 우리 정부 대표단이 증명서 발급을 해당 기업에 맡기는 수출자 자율발급제를 이미 초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자 산업자원부와 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지 수출업체가 중국 동남아산 저가 제품의 원산지를 싱가포르로 위장해 수출할 경우 세관에서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우리 중소기업이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한 일본도 기관발급제도를 관철시켰다며 협상팀을 공박하고 있다. 이대로 협상이 진행될 경우 칠레와의 FTA를 막기 위해 농민들이 극한 투쟁을 벌이던 바로 그 자리를 중소기업인들이 대신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농업과 공업,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는 서로 엇갈리는 만큼 논란이 불거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외국과의 FTA회담 테이블에 나서기 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전체 국익을 먼저 고려한 방침을 확정하고 그에 합당한 전략을 세우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일본의 최근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5명뿐이던 경제산업성의 FTA추진실 정원을 80명으로 늘리고 관계부처간 연락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의회도 FTA특명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이다. 민간부문도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FTA추진 국민회의'란 모임을 만들어 이해당사자들 보다는 국민 전체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도 귀담아 들을 내용이 적지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