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자산운용이 SK㈜에 요구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은 '최태원 회장의 퇴진'이다. 비자금 사건으로 사법처리를 받아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내 채권은행단은 최 회장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 이는 오너 경영에 대한 시각 차이 때문이다. 채권은행단은 오너가 경영을 해야 책임경영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소버린은 소위 '오너의 전횡'으로부터 기업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오너 경영은 기업에 역기능만 제공하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오히려 한국경제에 순기능을 제공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이는 '반도체의 교훈'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생산국이다. 20여년 만에 불모지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반면 일본은 메모리반도체에 관한 한 한국 뒤로 밀려났다. 한국에 반도체가 무엇인지 처음 전수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이 지난 1980년대 중반 반도체 기술을 배우러 '신사유람'을 떠난 곳이 일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앉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성공 배경으로 오너 경영을 꼽는다.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모든 결정에 책임을 지게 된다. 특히 위험이 따르는 결정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들은 판단을 주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본 반도체 업체가 그랬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가 투자 타이밍을 번번이 놓쳤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달랐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의 세대교체기마다 일본에 앞서 수천억원씩 몰아넣는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을 이어갔다. 이것은 오너체제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오너체제에 대한 막연한 불신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북유럽의 강소국들은 대부분 가족경영체제를 영위하고 있다. 정부도 오너의 경영권을 철저히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자국 자본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인 동시에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오너체제든 아니든 기업의 투명성은 전제돼야 한다. 투명한 경영이 이뤄지지 못하면 어떤 체제든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소버린의 주장에 동조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경영 불투명성' 문제는 한국적 상황이 만들어낸 기형적 행태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사실상 기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없었던게 사실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최태원 SK 회장이 "GE보다 투명한 이사회를 운용하겠다"고 말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불투명성을 야기한 과거의 선례를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최태원 회장이 오너로서 책임경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조주현 기자 forest@hn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