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외국인의 '안방'으로 전락한데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고질적인 '증시 외면현상'과 무관치 않다. 외환위기 이후 증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질적 변화를 거쳤지만 기관들은 오히려 주식을 처분하고 있다. 연기금 투신 등 국내 기관들은 지난 2000년 8조6천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한데 이어 2001년 2조7천억원, 2003년 8조9천억원 등 해마다 매도금액이 늘어나는 추세다. 올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외환위기 전에 30%를 웃돌던 기관의 주식비중은 작년말 12%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증권거래소는 추정했다. 이와달리 세계에서 증시가 가장 잘 발달돼 있는 미국은 2001년말 기준으로 기관 비중이 48%에 이른다. 영국(48%) 일본(40%) 프랑스(35%)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기관투자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국내 기관들이 이처럼 '조막손'으로 전락한데는 △'주식=위험자산'이라는 금융회사의 인식 △장기투자 여건 미비 △신인도 추락에 따른 개인 자금유치 부족 △낙후된 금융시스템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이 가운데서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국내 기관을 약체로 만든 주범으로 지목된다. 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사장은 "외국인은 5∼10년짜리 펀드로 한국시장을 접근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기관은 6개월∼1년짜리 단기 자금으로 승부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게임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 보험 증권사 투신사 연기금은 통상 6개월∼1년 단위로 보유주식을 시가로 평가, 회계 장부에 반영한다. 주식에서의 손실은 곧장 장부에 기록되고, 이는 회사 전체의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 연기금 관계자들은 "심지어 매월 투자 손익을 따져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소신을 가지고 우량주에 장기투자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반문한다. 한 보험사 임원은 "금융회사의 자금담당 임원들 사이에는 '주식은 잘 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다"고 털어놓았다. 따라서 주가가 오르면 얼른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고, 주가가 떨어지면 '리스크 관리'라는 명목으로 주식을 매각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