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적자본] (下) '한국 간판기업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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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에는 '다임러 경계론'이 내려져 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현대차의 제휴업체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현대차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경계론이 내려진 것은 다임러가 이 회사 경영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현대차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는 다임러는 5%의 지분을 추가로 살 수 있는 옵션도 갖고 있다.
이는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의 보유지분을 웃도는 수준이다.
현대모비스와 INI스틸이 지난 18일 현대자동차 주식 2백29만주를 취득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점을 고려해서 결정된 조치다.
현대차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특단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간판기업들의 경영권이 위협받고 있다.
삼성전자 포스코 국민은행 SK 등 한국 대표기업중 상당수는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웃돈다.
상장기업중 41개 업체가 이미 최대주주자리를 외국인에게 내주었다.
상장기업 전체 주식중 40% 이상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물론 해외펀드가 순수한 투자목적으로 국내기업 주식을 사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지분율 상승을 바라보는 재계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SK㈜의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실력행사를 하고 있는 소버린자산운용의 태도가 강건너 남의 일만은 아니어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펀드 몇개가 마음만 먹으면 경영권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는 판에 마음이 편할 리가 있느냐"고 말한다.
문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데 있다.
국내 기업은 자사주매수라는 궁여지책을 쓰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작년 한해에만 국내 상장기업이 사들인 자사주는 9조8천억원어치에 달한다.
1999년의 1조6천억원보다 6배이상 늘었다.
그러나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국인 자본을 당해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기업의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의 요구로 고배당을 실시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고 나면 중장기차원에서 꼭 필요한 적정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기업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유럽 각국이 실시하고 있는 다양한 보호장치는 눈여겨볼만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유럽은 우호적 M&A(기업인수합병)는 장려하지만 적대적 M&A에 대해선 법과 제도를 통해 기존 대주주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
예컨대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프랑스 등은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제도는 주식을 몇가지 종류로 나눠 의결권에 차별을 두는 것.
기업들은 의결권을 일반주식의 최대 1천배까지 보유하되 장내에서 거래할 수 없는 특별주식을 발행해 경영권을 안정시킨다.
또 국가전략산업에 대해선 정부가 1주의 주식만 갖고 있더라도 중요정책 사안에 대해 정부 동의를 받도록하는 황금주식제도를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채용 중이다.
물론 이같은 제도를 국내에 당장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유럽은 기업의 자금조달원이 은행 중심이지만, 국내에선 아직 증시가 기업의 주된 자금조달 채널이다.
특히 기업의 실제 주인이 주주인지, 임직원인가에 대한 관점도 아직 정립되지 못했다.
그러나 국내 간판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어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거세지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해 증시가 활성화되어야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경영권에 대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무장해제돼 있다"며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유럽의 제도를 연구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