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수렁에 빠진 접대실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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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원으로 합시다."(시민단체)
"경제상황도 안 좋은데 30만원으로 하면 충격이 너무 큽니다. 1백만원으로 해도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겁니다."(재정경제부)
"그러면 절충해서 50만원으로 하지요."(국세청)
요즘 기업들과 국세청 사이에 공방이 한창인 '접대비 실명제'의 적용대상 상한액은 이렇게 정해졌다.
국세청이 각종 세정개혁을 위해 만든 세정혁신추진위원회에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참여연대 출신 박원순 공동위원장과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이용섭 국세청장 사이에 이런 논의가 오간 끝에 '50만원'으로 낙착됐다는 것.
국세청은 이 같은 '절충' 과정을 거쳐 올해부터 기업이 50만원 이상 접대를 할 경우 접대 상대방의 이름과 목적을 명기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재경부가 우려했다는 대로 기업들은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정부 내에서도 '시기가 안좋았다'는 뒤늦은 자성론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이헌재 신임 경제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산하 기관장과의 자리에서 국세청장에게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고 질타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은 더욱 달아올랐다.
하지만 정책이나 제도는 한 번 시행하고 나면 손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이 이후의 정부 행보에서 확인되고 있다.
재경부는 "부총리 말씀은 시기적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는 지적일 뿐,일단 시행하고 있는 것을 당장 고치라는 뜻은 아니었다"는 해명을 곧바로 내놓았다.
국세청도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예정대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발은 좀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화점협회는 "국세청의 조치로 인해 판매에 결정타를 입고 있다"는 자료를 내놓았고,전경련 대한상의 등도 '접대비 실명제 기준 완화'를 연이어 촉구하고 있다.
정책은 결정하기도 어렵지만 결정된 후엔 담아들이기도 어렵다.
또 취지가 좋더라도 시행 시기에 따라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책이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현 정부가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왜 듣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