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귀국 前 '쇼핑숙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일본에서 장기간 생활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십중팔구 거치는 관문이 하나 있다.
귀국 전 쇼핑 숙제다.
이삿짐에 함께 꾸려 보낼 물건을 여기저기로 사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귀국 전 쇼핑은 특정인들에게만 떨어진 수고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직종 지위를 막론하고 일본에 발붙이고 살았던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겪는 공통의 과제다.
귀국 전 쇼핑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남의 나라이긴 해도 수년 간 정들었던 곳을 떠나자니 아쉬움을 지우기 힘들어 애용하던 물건, 먹거리를 챙길 수밖에 없다.
한국의 친지와 동료, 선후배 얼굴이 아른거려 오랜만에 만날 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 준비도 외면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부자나라 일본에는 적지 않으니 이 또한 귀국 전 챙겨가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 납득이 가는 이유다.
하지만 눈여겨 볼 대목은 쇼핑 숙제에 들어가는 준비물 리스트다.
일본인들도 덥석 사기 힘든 값 비싼 골프채와 최신 가전제품은 단골 메뉴다.
일용 잡화에서 값싼 먹거리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엔화와 맞바꾼 '메이드 인 재팬'이 이삿짐 보따리의 한 구석을 차지한다는 것이 이삿짐 회사 직원들 사이의 정설이다.
일부 이삿짐에는 서울에서 타기 힘든 오른쪽 핸들의 승용차도 버젓이 눈에 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 살다 동해를 건너오는 일본인들의 귀국 짐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몰라도 일본인들의 한국 상품 관심이 김치 등 극소수에 불과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삿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또 하나의 대일 무역 역조다.
"전자 회사에 다니는 분의 이삿짐을 꾸리러 갔는데 그 곳에서도 일제 가전제품이 적지 않게 나오더군요. 그 회사는 일본 시장을 개척하러 나온 업체라던데…"
이삿짐 회사 한 직원의 푸념에 비친 귀국 짐보따리는 한국의 만성적 대일 무역역조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또 다른 원인을 해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걸핏하면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면서도 상당수 한국인들이 아직 마음 속에서 떨궈 내지 못한 메이드 인 재팬 선호 심리였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