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을 가진 일부 인증기관의 독주. 이는 공인인증서 제도의 도입 초기부터 예견됐다. 게다가 인증서 유료화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일부 전문인증기관은 경영난에 빠져 출발선상에 서기조차 힘겨운 처지에 놓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공인인증기관을 지정할 때부터 구조적으로 독과점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존의 금융회사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금융결제원 증권전산과 한국정보인증 한국전자인증 등 신생 전문인증기관이 동일 선상에서 뛰게 만드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금융결제원은 은행을,증권전산은 증권회사를 자연스레 등록 대행창구로 확보하고 있다. 반면 전문인증기관은 '기댈 언덕'이 아예 없다. 전문인증기관 관계자들은 "이 같은 구도에선 오는 5월 유료화가 실시되더라도 고객을 확보하지 못해 도산하는 업체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비영리와 영리기관 사이의 경쟁=공인인증기관은 3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금결원과 한국전산원은 비영리기관이다. 금결원은 은행권에서 공동 출자했고 인증사업 운영비도 각 은행에서 받고 있어 인증시스템 운영비 압박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정부기관인 한국전산원도 마찬가지다. 금결원이 인증서 유료화와 관련해 '2천원선'이라는 원가 수준의 가격대를 고집한 것도 이같이 든든한 배경을 가진 덕분이다.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둘째로 증권전산과 무역정보통신은 둘다 영리 기업이지만 각각 증권거래소와 한국무역협회의 자회사격인 데다 주력 사업이 따로 있어 인증사업에만 매달릴 이유가 없다. 반면 한국정보인증과 한국전자인증은 인증 관련 사업만으로 생존해야 하는 전문 업체다. 이들 회사는 인증서 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도산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조건 속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를 떠안고 경쟁해야만 한다. ◆등록대행기관의 쏠림현상=공인인증서 사업의 성패는 등록대행기관(RA)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RA는 직접 대면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창구여서 인증기관으로선 RA를 많이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개인용 공인인증서 시장을 휩쓸고 있는 금결원(점유율 66%)과 증권전산(점유율 23%)의 지위도 'RA 파워'에서 비롯된다. 금결원과 증권전산은 각각 전국의 은행과 증권사를 거의 독점적인 RA로 두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증기관들은 금결원이나 증권전산 만큼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금융회사나 기업집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무역정보통신과 한국전자인증은 개인용 공인인증서 등록을 대행할 RA가 전무하다. 한국정보인증은 주주인 정통부의 협조로 전국의 우체국을 RA로 확보했고,최근 상호저축은행과 제일은행 등도 추가로 끌어들여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동안 공인인증서의 활용도가 가장 높았던 분야가 인터넷 뱅킹과 사이버 주식거래란 점을 감안할 때 금결원과 증권전산의 공인인증서 시장 독과점은 장기간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등록창구인 RA가 없으면 유료화에 들어가도 희망이 없다"며 "정부는 배타적인 은행과 증권사는 어쩔 수 없더라도 동사무소 등을 RA로 활용하는 등 전문인증기관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