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지난 2월27일 본회의장에서 이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산회를 선포하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본회의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4시 본회의장. 순조롭게 진행되던 본회의가 '6·25전쟁 휴전 이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둘러싸고 파행을 겪기 시작했다. 당초 이 법안은 의사일정에 없었으나 열린우리당의 요구로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표결에 부쳐졌다. 가결돼 법안이 정식으로 상정되자,이 법안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석에서 "막아야 한다"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어 한나라당 의원들은 긴급의원총회 명목으로 일제히 빠져나갔다. 한나라당은 이미 본회의 직전 의총에서 법안 상정을 반대키로 했다. 보수층 '표심'을 겨냥해서다. 하지만 상정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에서 상당수 이탈표가 나왔고 단속할 필요성을 느낀 지도부가 다시 의총을 소집한 것이다. 박 의장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본회의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오후 4시13분 정회를 선포했다. 이날 상당수 의원은 의총 뒤 본회의장으로 향하지 않고 주말 '표밭갈이'를 위해 지역구로 떠났다. 박 의장은 각 당에 출석을 독려했지만,오후 5시30분까지 회의장에 들어온 의원들은 의사정족수(1백36명)의 절반도 안되는 50여명에 불과했다. 박 의장은 산회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날 지역구 의원정수를 15명 늘리는 '선거구 획정 기준안' 등 3개안만 처리됐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어민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법 등 시급한 민생법안 20건은 다뤄지지 못했다. 의원들은 의원수 늘리기 등 자신들의 '밥그릇'챙기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민생은 외면한 것이다. 16대 국회의 '자화상'이다.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