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김치가 없다는 겁니다. 한국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되나 봐요."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참여한 한국 근로자들의 얼굴색은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봄날의 햇살이 강렬하게 쏟아지는 29일 오후 2시가 막 지날 무렵 오무전기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훔쳐가며 일하고 있던 티크리트주 베이지시 인근의 작업현장을 찾아가 봤다. 이날 작업이 지정된 현장은 베이지에서 바그다드 쪽으로 10㎞ 가량 떨어진 들판으로, 불과 3개월 전 다른 오무전기 근로자 2명이 괴한들의 습격으로 사망한 도로부근이다.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오무전기 직원 등 한국인 근로자 20여명은 주변에 흩어져 오래 방치해 망가진 송전탑을 되살리는 공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국 근로자들이 맡은 일은 송전탑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40만볼트 규격의고압선을 송전탑에 걸쳐 펼치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고압선 1개의 길이가 5㎞ 이상이기 때문에 10∼15m 높이의 송전탑으로 고압선을 올려 팽팽히 고정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원주에서 왔다는 조훈희씨 등 오무전기 근로자들의 사는 얘기를 들어봤다. --작업은 잘 돼가나. ▲바람이 심해 힘들다. 3월 말은 돼야 모두 끝날 것 같다. 총 9개 섹션(전선 1개 길이의 구간으로 송전탑 수는 10개 안팎)중 4개를 했으니까 5개가 남았다. 본격작업이 2월부터 시작됐으므로 시간상으론 절반 이상을 한 것이다. 작업방향은 베이지에서 바그다드쪽으로 해 나가고 있다. 저쪽에서 우리쪽으론터키와 파키스탄 업체들이 하고 있다는 데 아직까지 1개 섹션도 끝내지 못했다고 하더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도 송전선 복구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 ▲그런 것 같다. 워싱턴그룹(원청업체)에서 3월 말까지 끝내야 한다고 얼마나쪼아대는 지 모르겠다. --위험하진 않나. ▲워싱턴그룹이 이라크 현지인과 미국의 사설 경호원을 작업현장 주변에 배치해놓는 등 안전문제를 특히 신경쓰고 있다. 그동안 위험을 느껴본 적은 없다.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나. ▲요즘은 전화하면 바그다드는 난리났는데 그쪽은 괜찮으냐고 물어온다. 그러면 여기는 까딱없다고 안심시킨다. --숙식은 어떻게 해결하나. ▲아침과 저녁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베이지의 K-2 미군 기지에서 미군들이 먹는 것과 똑같이 먹는다. 점심은 싸온다. 국물이 없어 죽겠고, 새참을 주지 않아 배가 고프다. --음식에서 한국 근로자를 배려하지 않나. ▲사고나기 전엔 한국사람들이 많아 한국메뉴가 가능했는 데 지금은 20명 정도 밖에 없어서 그것이 어렵다. --이곳에선 돈을 좀 버나. ▲한국에서 보단 낫다. 돈 쓸 일이 없으니 그것도 버는 것이다. --제일 힘든 부분은. ▲김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되잖나. 고추장을 좀 싸왔는데 입맛이 없을 때에만 아껴서 먹고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출 등 아무 것도할 일이 없어 답답하다. --한국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반응은. ▲현재까진 매우 좋은 편이다. 하지만 파병후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이라크는 어떤 나라인 것 같나. ▲우리나라의 60년대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농토가 엄청나게 넓고 양만 키우는 줄 알았는데 농사짓는 걸 보고 놀랐다. 한국 사람들이 오면금방 부자가 되겠더라. --미군에 대한 반응은. ▲코리아 굿(GOOD)하다가도 아메리카 얘기만 나오면 정색하고 무조건 싫어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들은 인터뷰 중에도 예정됐던 일을 마쳐야 한다며 작업을 계속했고, 주변에배치된 경호요원들도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베이지=연합뉴스) 박세진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