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법자금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정치도 죽고 경제도 활력을 잃고 있는데, 검찰의 칼가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는 기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온 나라가 검찰의 일거수 일투족에 숨을 죽이고 일희일비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총선이 가까워 오면서 시민단체들이 공천후보자들을 평가하며 낙선·당선운동에 나섰지만, 2000년과는 달리 그 열기가 느껴지고 있지 않다. 왜일까. 시민단체보다는 검찰이 낙선·당선운동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치인 ○○○을 지목하며 혐의가 있다고 발표하면 그날로 정치적 사약이 당도한다. 검찰의 혐의확인으로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정치인들이 어디 한둘인가. 또 검찰이 기업총수를 소환하겠다고 하면 그 기업도 사색이 된다. 국제적 신인도 하락도 걱정해야 하고 정경유착의 장본인으로 낙인찍혀 옴쭉달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승사자와 같은 역할이 검찰이 자임한 역할은 아닐 터이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뿐"이라고 줄곧 말해왔다. 하지만 검찰수사가 '결과적으로'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막대하다면, 수사의 '외부효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외부효과란 무엇인가. 행위자의 행위가 비의도적으로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서 '긍정적' 외부효과와 '부정적' 외부효과가 있다. 오염물질을 무단 방류하면 부정적 외부효과이고 청계천 복원공사로 주변 집값이 올라가면 긍정적 외부효과이다. 검찰수사의 외부효과는 긍정적인 것일까, 아니면 부정적인 것일까. 일단 '백년하청'의 정치가 종식된다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편파성 시비가 격렬해지면 '정치검찰'이라는 부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검찰의 출구조사에서 나온 7백22억대 0이나 4백10억대 42억5천만의 숫자는 공정성의 숫자라기보다는 불공정성의 숫자로 읽혀진다. 한화갑 의원의 경선자금이 불법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동영 의장의 경선자금은 불법시비에서 자유로울까. '이적료'니 '복당비'니 하는 용어를 검찰이 스스럼없이 쓰는 것도 이미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 있다는 증거다. 노무현 캠프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 검찰은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은 돈'일뿐 아니라 '정의'이기도 하다. 불법자금을 총선 전에 밝히는 것과 총선 후에 밝히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닐까. 한편 검찰의 시퍼런 칼날 앞에서 투자마인드가 살아 꿈틀거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자리창출과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이야말로 부정적 외부효과일 터이다. 또 기업총수나 전문 경영인을 구속한다고 해서 앞으로 기업의 보험성 정치자금이 근절될 것인가. 기업들이 권력을 잡은 쪽에 대해서 이제까지 함구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같은 이유로 권력의 속성을 감안할 때 기업의 불법자금 공여와 정치권의 자금수수가 같은 잣대로 가늠될 수 있는 지도 의문이다. 분명히 부정부패의 3류 정치와 정경유착의 2류 기업이 우리 현주소이긴 하지만, 검찰이 정치권이나 기업을 '과잉'압박하는 상황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검찰로서는 이참에 '앙시앙 레짐'을 끝장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치권의 물갈이나 기업의 투명성 제고가 수사의 참뜻은 아니다. 검찰로서는 증거 위주로 불편부당하게 수사를 하고 있는데, 그 고충을 알아주기는 커녕 야당은 야당대로 왜 편파성 시비를 벌이고 있는지 또 기업들은 기업대로 왜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지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법의 이름으로 모든 악을 일거에 척결할 수는 없다. '앙시앙 레짐'을 타파하려면 검찰의 노력외에 관련 당사자들의 일치된 협력이 있어야 한다. 낡은 관행은 엄연한데 일방적인 검찰수사로 인하여 '운좋은 정치인'과 '운나쁜 정치인'이 생겨나고 또 '운좋은 기업인'과 '운나쁜 기업인'이 구분된다면, 그 역시 긍정적 외부효과라기 보다는 부정적 외부효과일 수밖에 없다. 검찰의 칼날이라면 '무딘' 칼날보다는 '예리한' 칼날이 좋다. 하지만 '예리한' 칼날보다는 '센스있는' 칼날이 더 좋다. 부디 '센스있는' 칼날을 휘두르는 검찰의 수사모습을 기대한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