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기·전자분야 기초 기술은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전기의 게오르기 박 기술고문(69)은 한국에 들어와 있는 '러시아 엔지니어의 대부'로 통한다. 현재 삼성전기를 비롯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코닝 삼성종합기술원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러시아 엔지니어들은 약 50여명. 지난 92년 삼성종합기술원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와 97년 삼성전기 기술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박 고문은 러시아 출신 엔지니어 1호로서 이들을 국내로 유치,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삼성계열 사장들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는 관련 러시아 기술자를 찾아 연결시키기도 한다. 그는 요즘 삼성전기의 주력사업 중 하나인 백색LED(발광다이오드)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8월 삼성전기가 광학 및 반도체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러시아 최대 국립연구소인 이오페(Ioffe)연구소와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일에 앞장선 데 이어 최근에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백색LED 관련 러시아의 우수 인력을 유치하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백색LED의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차세대 소재를 개발하고 첨단 설계기술을 이전하는 일이다. 박 고문은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나홋카에서 태어난 '고려인'이다. 본관이 밀양이라는 그는 러시아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모스크바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폴리우스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연구에 열정적이다. "50년 이상 러시아에서 살았지만 항상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습니다. 러시아의 숨은 과학기술과 엔지니어를 발굴,한국 기업들의 기술력 향상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박 고문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빛바랜 표지의 족보를 내보이며 아버지의 나라에서 뿌리를 찾겠다는 작은 소망도 숨기지 않았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