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속타는 화섬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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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선 묘책이 없어요."
원자재값은 줄줄이 뛰고 제품값은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화섬업계 C사장의 말이다.
다른 회사에 물어봐도 '속수무책'이라는 답만 돌아온다.
국제시장에서 결정되는 화섬원료인 TPA(테레프탈산) 등의 가격을 국내 섬유업체에만 싸게 적용할 수는 없다.
최대 수요처인 대구지역의 직물 수요가 급감해 제품값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이미 중국에 시장을 빼앗긴 상태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생산량을 줄이면 될 것 아니냐는 교과서적인 조언도 화섬업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산업의 기술적 특성상 공장을 세우지 않고 생산량만 줄이면 채산성이 더욱 악화되기 때문.
게다가 정부는 정치논리에 휘말려 경쟁력을 잃은 부실 화섬기업들을 위해 워크아웃이라는 '패자부활전'을 마련해줬다. 문제는 워크아웃이 장기화되면서 폴리에스터나 나일론의 공급과잉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현재 화섬업계 13곳 중 절반에 가까운 6개사가 채권단으로부터 워크아웃 이나 화의 등 지원을 받고 있다.
싸움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다 함께 쓰러지는 모양새다.
눈치 빠른 일부 회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이미 화섬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효성 코오롱 등 남아 있는 자들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
'도망칠 타이밍'을 놓쳐버린 탓이다.
이미 수백억원대의 적자를 내고 있는 사업을 팔아 넘기기에는 손해가 크다.
사업을 아예 접어버리고 싶겠지만 이마저 강성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에 발목이 잡혀 여의치 않다.
'해결책은 고부가가치 소재다'라는 구호도 효과가 없다.
잘 팔린다 싶으면 너도 나도 뛰어드는 게 한국 기업들의 생리여서 신소재로 각광받는 스판덱스와 초극세사는 공급과잉 상태로 몰리고 있다.
화섬업계에선 너도나도 '바뀌어야 산다'고 외친다.
그러나 6년 전 외환위기 당시 내걸었던 '뼈를 깎는 구조조정' '새로운 수익 아이템 개발' 등의 숙제부터 제대로 풀었는지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유창재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