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소비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또는 '진정한 고객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기업이면 반드시 물을 것 같지만 이런 절차를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벽산의 경우도 예전에는 직접 건물에 입주하는 소비자에게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화재가 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축주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설계를 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하는 설계사무소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았다. 직접 자신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시공사만 고객으로 생각했다는 얘기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이런 시각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종 소비자나 진정한 고객을 배려하지 않은 결과는 머지않아 나타나게 돼있다. 시공사는 시공만 하면 그만이지만 소비자나 건축주들은 다음에 구매할 때 다른 자재를 찾게 되는 것이다. 혁신 이전의 벽산의 사례처럼 기업들은 흔히 직접적인 구매자의 입맛에만 맞게 제품ㆍ서비스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제품ㆍ서비스를 직접 구매하는 사람은 실제로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구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과 다를 때가 많다. 여기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길이 있다. 구매자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이전에 간과했던 고객을 살펴보면 경쟁없는 시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구매자 집단을 공략해야만 새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구매자에 집중해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미국의 온라인 재무정보 제공업체인 블룸버그. 블룸버그가 사업을 시작하던 1980년대 초에는 로이터, 텔레레이트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 업체는 재무정보 단말기의 직접적인 구매자인 전산담당자의 구미에 맞게 제품을 설계했다. 전산담당자가 관리하기 편하도록 표준화된 단말기 등을 만드는데 중점을 뒀던 것이다. 시스템이 전산쪽에 맞춰 설계되다 보니 실제로 이를 사용하는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들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블룸버그는 여기에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엿봤다. 이 회사는 사용자들을 위한 다양한 기능들을 내장한 새로운 재무정보 단말기를 선보였다. 모니터를 두개로 늘려 프로그램 창을 자주 여닫지 않고도 필요한 정보를 동시에 볼 수 있게 했다. 또 버튼 하나로 온라인상에서 수익률 계산 등이 실행되게 만들었다. 시세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기능도 추가했으며 필수 재무용어들도 키보드에 표시해 한눈에 알아보게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증권거래인과 분석가들은 블룸버그의 단말기를 구입하도록 전산담당자에게 압력을 가했다. 블룸버그는 이에 힘입어 서비스를 시작한지 10년이 채 안돼 온라인 재무정보산업을 석권할 수 있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