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들의 대혁명으로 디즈니황제 무너지다.' 지난 20년간 세계 최대 연예오락업체인 월트디즈니를 이끌어온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61)이 소액 주주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는 3일 주총 직후 "주주들의 불신임 의사를 존중해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직은 계속 수행키로 했다. 신임 회장에는 상원의원 출신의 조지 미첼 이사가 선임됐다. 비오너이면서도 지난 1984년부터 회장과 CEO직을 독차지하며 '디즈니의 황제'로 군림해온 아이스너가 CEO직만 가진 '디즈니의 왕'으로 격하된 셈이다. ◆소액주주의 회장 축출은 미 기업 사상 처음=황제를 왕으로 끌어내린 것은 일반 투자자들이었다. 이날 월트디즈니의 필라델피아 주총장을 메운 3천여 주주들은 5시간의 마라톤 총회 끝에 아이스너 회장에게 43%의 불신임표를 던졌다. 불신임표가 과반수를 넘지못해 아이스너 축출에는 실패했지만,아이스너의 '회장직 자진포기'라는 성과는 얻어냈다. 일반 주주들이 단결해 최고경영진의 날개를 꺾은 이번 사태는 미 기업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동안 아이스너의 축출운동을 벌여온 로이 디즈니(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조카)는 "미 기업 연대기에 전례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아이스너 회장의 독단적 경영과 경영실패에 대한 주주들의 승리라고 지적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아이스너 회장의 경영실적은 주주들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1997년과 2001년 각각 인수한 ESPN스포츠채널과 ABC방송은 모두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그 결과 디즈니 주가는 지난 5년간 25% 급락했으나,강성 스타일의 독단경영으로 이사회를 좌지우지했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수년간 디즈니이사회를 '최악의 이사진'으로 폄하했다. ◆아이스너,연내 CEO직도 물러날 듯=아이스너가 CEO직을 얼마나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미 기관투자가의 대표인 캘퍼스(캘리포니아연금공단)가 총회 직후 아이스너의 연내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2006년 만료되는 CEO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중도퇴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불명예 퇴진 위기에 몰린 아이스너의 디즈니인생은 창업주의 손자 로이 디즈니주니어 회장 후임으로 지난 84년 월트디즈니 사상 첫 외부영입 회장겸 CEO로서 시작됐다. 당시 경영난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의 먹잇감이 됐던 월트디즈니는 파라마운트영화사의 사장이던 아이스너를 구원투수로 초빙했다. 아이스너가 월트디즈니에 영입될 때처럼,그가 퇴진 위기에 몰린 지금 월트디즈니가 또다시 적대적 인수합병의 타깃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월트디즈니 이사회의 거부에도 불구,미 케이블방송그룹 컴캐스트는 5백41억달러에 월트디즈니를 인수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