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만 미술이냐? ‥ 안규철씨 5년만에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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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차림의 두 남자가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한 사람이 돌연 상대방을 잡아 먹는다.
그 사내는 바닥에 희생자의 모자만 남겨둔 채 다음 희생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갤러리 입구에 설치된 가로 12m길이의 "모자"라는 대작은 다섯 컷의 흑백 그림으로 이같은 허구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다뤘다.
약육강식의 살벌한 인간관계를 희극적으로 반전시킨 작품이다.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안규철(49.한국예술종합학교 부교수)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가다.
"49개의 방"을 주제로 설치작과 드로잉 등 8점을 출품했다.
안씨는 80년대 '풍경조각'으로 불리던 시사성있는 작품을 시작으로 90년대 이후 개념적인 작업을 통해 현실 속의 부조리와 폭력을 끊임없이 다뤄 온 작가다.
서울대 미대와 독일 슈튜트가르트국립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의 작업은 사물과 조각작품의 경계에 있는 유사(類似)기성품을 만들고 여기에 언어를 덧붙이는 방식이다.
'보여주는 것'을 절제하는 대신 사물과 언어의 결합을 통해 관람객에게 지적인 연상작용을 이끌어내는 게 특징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49개의 방'은 가로,세로 각각 7개의 문으로 49개의 방을 구성한 설치작품이다.
1백12개의 문이 만든 방들은 성인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다.
하지만 4면이 여닫이 문으로 구성돼 있어 타인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네트워크의 연결로 인해 끊임없이 간섭하고 간섭당하면서도 파편화된 관계만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바닥없는 방'은 허리 아래 벽과 바닥이 없이 천장에 매달려있는 방이다.
바닥없는(bottomless) 삶,뿌리 박히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며 임시로 사는 삶을 의미한다.
작가는 말과 사물사이의 불일치,보는 것과 믿는 것의 충돌,진실과 그 증거물간의 모순에 대해 항상 의문을 제기한다.
삼성미술관의 안소연 수석학예연구원은 "그의 작품들은 눈으로 보는 것만을 믿는 맹목적인 우리의 시각문화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4월25일까지.월요일 휴관.(02)2259-7781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