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이름으로 된 예금이나 주식 등 금융자산이라 하더라도 실소유자가 따로 있다는 점이 명백히 입증될 경우 실소유자에게 계좌 명의를 되돌릴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부동산이 아닌 금융자산을 대상으로 원상회복을 명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는 '실명거래 원칙'이라는 금융실명제법의 적용을 받는 금융 계좌라 할지라도 명의신탁이 입증된다면 원소유자 명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동안 타인 명의로 금융자산을 빼돌린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 판결로 평가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5부는 K종금이 박모씨를 상대로 '정모씨가 박씨 금융계좌 명의를 빌려 재산을 빼돌렸다'며 낸 위탁계좌 명의변경 청구소송에서 "박씨는 위탁계좌 명의를 정씨로 원상회복시키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의 취지는 명의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보다는 실명거래를 통해 투명성과 조세형평을 제고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실소유자가 따로 있다는 점이 법원 판결 등에 의해 명백히 밝혀진 경우에는 문제의 금융자산 명의를 원소유자로 변경하는 절차가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K종금은 지난 96년 7월 N반도체에 30억원을 대여하면서 이 회사 대표이사였던 정씨의 연대보증을 받아뒀으나 N사가 경영 악화로 화의절차에 들어가는 바람에 2억8천만원만 변제받았다. 이후 정씨가 개인 재산을 피고 박씨 등 명의의 금융자산 형태로 명의신탁하자 K종금은 이를 정씨 명의로 원상회복시켜 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채무자가 기업 부도 등 이유로 재산을 타인 명의의 금융자산으로 빼돌렸을 경우 여태까지 속수무책이었던 채권자의 채권 회수에 대해 권리를 인정한 것으로 향후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됐던 전두환씨 차남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된 뭉칫돈의 경우도 전씨의 돈이 증여된 것이 아니라 명의신탁된 것이라는 점이 입증된다면 전씨 명의로 계좌를 되돌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