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準亨 < 서울대 교수.공법학 >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10년여 여전히 해결을 못 본 개혁과제가 있다. 법조인 양성과 선발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추진위원회, 김대중 정부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 등이 추진했지만 미해결로 남은 이 문제는 현재 대법원장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의 안건으로 다뤄지고 있다. 물론 사법개혁위 의제에는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국민의 사법참여 등 여러 과제들이 포함돼 있어 이 과제에 전념하라고 주문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올 4월부터 출범하는 일본식 로스쿨제도의 운영상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4월말 공청회를 한다고는 하지만 개혁위 활동시한인 올해 말까지 성공적 안이 나올지 걱정스럽다. 법학교육, 사법시험, 연수의 3단계로 돼 있는 법조인 배출제도의 문제점들을 새삼 일일이 부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고시광풍으로 상징되는 법조인 배출시스템의 모순이 우리 사회의 인적 자원 배분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조인 배출과 대학 법학교육이 연계돼 있지 않고,사법시험 합격자 대부분이 극소수의 상위권 대학에 집중돼 있으며,초대형 사설 고시학원들이 번성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나 이공계 기피 풍조 등도 따지고 보면, 의과부문의 과열과 더불어 고시광풍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현행 법조인 배출제도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본질에 충실하면서 과감히 개혁돼야 한다.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바꾸기 위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된다면 그 목표에 투철하게 로스쿨 제도의 본질을 극대화하는데 치중해야 한다. 로스쿨의 본질은 대학이 주체가 돼 변화하는 사회현실에 맞는 실질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3∼4년 비법학계열 전공학부에서 폭넓은 인문사회적 소양을 쌓은 사람들이 법과대학원 정원의 과반수를 점하도록 하고, 원칙적으로 법과대학원을 졸업해야만 법조인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전공과 상관없이 너도 나도 고시전선으로 몰려가는 병적 현상, 심지어 입학하자마자 고시공부를 시작하고 고시학원을 드나드는 풍조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이 변호사로 개업할 사법시험 합격자들을 봉급을 주어가며 초대형 연수원에 수용,교육시켜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립사법대학원 같은 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은,본질에 맞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시도일 뿐이다. 둘째, 위원회는 개혁의 자율성을 핵심성공요인(CSF)으로 내세우지만,역으로 대학들에 참여의 기회를 최대한 제공해주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법과대학을 고수하려는 대학에도 일종의 스와핑방식처럼 학부정원을 감축해 전문법과대학원을 설립하고 단계적으로 유연하게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전국 법과대학(법학과)의 과반수를 점하는 영세규모 학과들도 일정한 기한을 정해 컨소시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고등법원 소재지들을 거점으로 법과대학원이 설립될 수 있도록 균형발전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개혁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절대적 장애는 없다고 본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1999년 7월부터 집중적 작업을 벌인 끝에 개혁안을 확정했고 일본식 로스쿨인 66개의 법과대학원을 인가해 올 4월부터 출범시킬 예정이다. 아직 전망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제도개혁에 신중하기로 유명한 일본이 이렇게 과감하게 나선 배경이 무엇인지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법조인 배출제도의 개혁 없이는 교육개혁도 없다. 아울러 법조인 배출제도의 개혁이야말로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고질적 학벌구조를 혁파하는 효과적인 길이 된다는 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점이다. 사법개혁위원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joonh@snu.ac.kr